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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광기
2020년 03월 31일(화) 00:00
박 은 비 동신대 식품영양학과 3학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집 밖에 나가는 게 눈치 보이는 요즘, 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1년 전 단순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이유로 샀던 일본인 작가의 저서 ‘인어가 잠든 집’이었다.

추리 소설 작가로 유명하다는 평 때문에 기대를 하고 샀던 책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랐다. 이 책에는 일반 소설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뇌사자가 나온다.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의식불명 상태가 된 여자아이 ‘미즈호’가 바로 잠든 인어다. ‘뇌사’라는 비극을 맞이한 미즈호는 뇌가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으며, 자가 호흡마저 불가능하다. 의식의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기계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뇌사’는 식물인간과 다르다. 식물인간은 대뇌에 입은 심각한 피해로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할 수 없긴 하지만, 뇌간은 손상되지 않았다. 뇌간이 살아있으면 자고 깨는 행위나 위장 운동, 자발적 호흡 등이 가능하다.

우리가 가끔 오래 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로 누워 있다가 깨어난 사람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듣는데, 이들은 모두 뇌사자가 아닌 식물인간이다.

반면 뇌사자는 뇌간을 포함한 뇌의 모든 기능이 정지돼 있다. 인공호흡기 등 기계 도움으로 호흡이나 생명 유지는 가능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결코 회복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즈호의 담당 의사는 ‘뇌사’ 라는 소견과 함께 부모에게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착한 딸아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장기 기증을 결정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부부가 동시에 아이의 손이 움찔하는 것을 느낀다. 이후 엄마 가오루쿠는 장기 기증을 거부하고 뇌사자가 돼 버린 딸을 자신의 곁에 두고 지켜보는 삶을 선택한다.

일본은 다른 나라와 달리 뇌사로 의심되는 환자가 장기 기증의 의사를 밝힐 때에만 뇌사 판정을 진행한다. 단, 장기 기증의 의사가 없는 경우라면 심장이 멈출 때까지 뇌사 판정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즈호는 ‘뇌사’인데도 ‘뇌사’ 판정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장기 이식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지만, 기증자가 없어 죽음을 맞이한 또 다른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용히 잠든 채 누워 있는 딸의 생명이 끝났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 미즈호의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살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아이의 죽음, ‘인어가 잠든 집’은 이 두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 그 사랑을 넘어선 광기를 보여주며 ‘뇌사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진다.

몇 년 후 결국 미즈호는 죽고 그 아이의 장기는 또 다른 아름다운 생명들을 살리게 된다. 그 결말을 마주한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부모에게 자녀의 몸까지 처분할 권리가 있을까. 과연 인간은 언제부터 죽는가. 기계로 움직이는 인간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의 만족을 위해,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생명을 무시하는 게 옳은 걸까. 장기 이식이라는 절차가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심장은 뛰지만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단의 순간을 미즈호 가족과 함께 경험하면서 의식과 생명, 삶과 죽음의 경계와 존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미즈호 엄마의 말이 여전히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세상에는 미쳐서라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야. 만약 이쿠토(둘째 아들)가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또 미칠 거야.” 사랑과 광기는 단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