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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와유(臥遊), 산수화 한 점에 위로 받는‘집콕’생활
2020년 03월 12일(목) 00:00
이성길 작 ‘무이산의 아홉 굽이 경치’
조선시대 선비들이 성리학의 교과서로 삼았던 주자(1130~1200)는 만년에 중국 남동부 제일의 명산인 무이산으로 들어갔다. 무이산 아홉 계곡의 굽이굽이 아름다움을 마주한 주자는 ‘무이구곡가’를 짓고 자신의 학문적인 성취를 노래했다. 그 이래로 주자의 학문을 흠모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무이산 대신 주자학문의 본산을 그린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를 방안에 걸어두고 누워서 감상하기를 즐겨했다.

주자를 본떠 율곡 이이도 해주 석담에 은거하여 ‘고산구곡가’를 지어 우리 산천을 노래했으며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열고 ‘도산십이곡’을 지었는가 하면, 우암 송시열도 속리산 뒤편 화양계곡으로 낙향하여 ‘화양구곡’에서 이상향을 찾으려했다.

이렇듯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산수화는 단순히 자연의 외양만 그린 것이 아니었는데 특히 시·서·화 활동이 생활의 일부였던 조선시대 사대부의 산수화는 선비들이 살고 싶었던 이상화된 풍경으로 그 속에서 마음껏 유랑하며 신선이 되는 삶을 꿈꾸었던 대상이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선비화가 이성길(1562~ ?)의 ‘무이산의 아홉 굽이 경치’(1592년 작)는 무이구곡을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화면 가득 아홉 계곡의 경치가 묘사된 두루마리 그림이다.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 멀리 가까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어선 산봉우리, 선비들이 강론과 저술작업에 전념했을 것으로 보이는 가옥 등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후일 무이구곡도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금강산도 등은 우리 강산을 ‘와유’하며 감상하는 유형으로 발전했다.

온 세상이 ‘잠시 멈춤’ 상태에서 은거하듯 꽁꽁 문 닫고 지내는 시절, 옛 선비들처럼 명승을 그린 산수화 한 점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를 누워 감상하면서 그림 속 자연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 절실하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