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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피해자 문제를 대하는 정치권의 역사 인식
2020년 02월 11일(화) 00:00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지난해 한일 관계는 일찍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1일 반도체 산업의 주요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8월 2일 일본 각의에서 한국을 전략 물자 수출에서 안전 보장 우호국을 뜻하는 ‘백색 국가’ 대상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기 상황을 불러왔다. 그로 인한 후유증은 아직도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라고 불러 왔지만,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보복’이란 ‘남에게 받은 해를 그만큼 되돌려 주는 일’을 뜻한다는 점에서 볼 때, 보복이 아니라 사실상 일방적인 ‘경제 침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일 관계의 뿌리에는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가 있다. 우리 대법원은 2018년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에서 일본 기업에 손해 배상 책임이 있음을 확정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한 피고 기업들은 전혀 배상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사이 지난해만 하더라도 광주에서 소송에 임했던 피해자 세 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피해자들은 어쩌면 지금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기업들의 무모한 ‘버티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베 정권의 압력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행태는 일본 정치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 세력이 전후 심판을 받거나 청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일본의 지배 세력으로 남아 현재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베 신조 총리만 하더라도 고조부는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오시마 요시마사로,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배웠으며, 친할아버지는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베 간이다. 또 외할아버지는 제56·57대 내각 총리대신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이며, 작은 외조부(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는 제61·62·63대 내각 총리대신을 역임한 사토 에이사쿠이다.

이렇듯 침략 전쟁의 광기가 넘치던 시절에 일본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가문에서 성장해 정치를 세습한 아베에게 애초 올바른 역사 인식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아베 정권이 막무가내로 나오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일본 정치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인식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베 정권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니, 차선책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기억·화해·미래 재단 법안’이다.

‘문 의장 안’은 한일 양국 기업 및 개인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기억·화해·미래 재단’을 설치, 국외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제10조), 국외 강제 동원 피해자가 재단으로부터 위자료를 지급받으면 ‘제3자 임의 변제’로 규정해 민사상의 강제 집행 권한은 포기된다.(제18조) 또한 피해자가 위자료를 지급받은 때에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재판 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제19조)

한마디로 사죄와 반성 없는 ‘기부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고,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역사적·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채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다. ‘문 의장 안’은 일본과 전범 기업의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우리 국회가 나서서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말할 것 없이 반성은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오는 가해자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들어주는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인 법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 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을 거론한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한 푼이라도 손에 쥐어 보고자 하는 것이 피해자들의 간절한 소망이라는 것이다. 어느새 피해자들의 궁박한 처지가 오히려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인 법안을 강행해야 하는 이유로 둔갑되고 있는 것이다.

오른 손이 주든 왼손이 주든 피해자들은 그저 돈만 받으면 된다는 인식은 생각할수록 끔직하다. 그 가벼운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이 어쩌면 이 문제를 광복 75년이라는 세월까지 이르도록 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