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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람세스 2세, 여권 갖고 파리행 비행기 타다
황제의 세계사 - 조지무쇼 편저· 김정환 옮김
2020년 01월 30일(목) 22:50
영국에서 전해오는 일화 가운데 앨프레드 대왕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앨프레드가 바이킹과 전투에서 패배해 어느 농가에 숨어들었다. 안주인이 숨어 있는 동안 빵이 구워지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앨프레드는 바이킹과의 전투에 몰입한 나머지 깜빡 빵이 타버린 사실을 잊어버렸다. 화가 난 안주인이 앨프레드를 두들겨 팼다. 이때 앨프레드 부하가 나타나 왕의 신분을 밝히자 안주인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앨프레드는 이렇게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짐의 잘못이오”라고.

위의 사례는 앨프레드가 얼마나 도량이 넓은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영국 역사에서 추앙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이킹 위협에 시달리던 9세기에 나타난 지도자로 잉글랜드라는 나라의 근간을 다졌다. 그가 왕을 넘어 대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황제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 나왔다. ‘쉽게, 재미있게, 정확하게’라는 3대 슬로건을 내걸고 설립된 기획편집 집단인 조지무쇼가 펴낸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황제의 세계사’가 바로 그것.

책에는 람세스 2세를 포함해 고대 바빌론 제1왕조부터 근대 제정 러시아를 아우르는 30인의 황제가 나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함무라비 왕부터 ‘천하를 다스려도 영생을 얻지 못한’ 진시왕,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아우구스투스에 이르기까지 익히 아는 왕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수를 맡은 모토무라 도쿄대학 명예교수는 “흔히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말하지만 무조건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의문이라면 그저 우문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만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없었다면 헬레니즘 세계가 성립할 수 있었을까?”

위에 언급한 왕들 외에도 역사 시간에 들었거나 배웠던 이들도 적지 않다.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바란 불면의 일벌레’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황제의 의무는 ‘과학’과 ‘대학’’임을 몸소 실천했던 프리드리히 2세를 비롯해 ‘포용의 용광로로 전승기를 만든’ 슐레이만 1세, ‘중국 역사상 가장 긴 61년간 황제 노릇’을 강희제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영제국을 만든 유럽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 ‘최고로 무능했던 최고의 교양인’ 니콜라이 2세와 ‘까막눈도 유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아크바르대제도 눈에 띈다.

책의 특징은 일반적인 지식 전달에 있지 않고 교양과 재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양을 넘어 흥미 부분에도 신경을 썼기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온다.

한 예로 ‘여권을 갖고 파리행 비행기를 탄 파라오’인 람세스 2세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왕을 ‘파라오’라고 하는데,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3세기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비행기를 그것도 여권을 소지하고 파리로 떠날 수 있을까?

정확히는 ‘미라’를 화물이 아닌 여객으로 대우했다는 의미다. 이집트 정부는 람세스 2세의 미라의 직업란에 ‘파라오’라고 기재된 여권을 발행했다. 파리 공항에서는 프랑스 대통령 의장대가 예우에 맞게 영접했다. 람세스 2세가 이집트 역사와 세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세계 최초 강화 조약을 맺어 평화를 이끌었으며, 당시 건축물은 구약성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세계 유산에 영향을 미쳤다.

모토무라 료지는 이렇게 말한다. “헤겔은 ‘민중이나 정부’는 역사에서 무엇 하나 배운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분명히 집단으로서의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면 이것저것 상상해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상상력이라는 마음의 유희야말로 학습 능력을 북돋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의 길·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