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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이 광주 방림동에 살아 있다
2020년 01월 20일(월) 00:00
[정동재 광주시교육청 주무관]
가보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여전히 광주에는 일제에 맞서 싸웠던 ‘광복군 할아버지’가 97세의 나이로 허름한 맨션에 살고 있다. 우리가, 우리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돈을 들여 중국 만주와 일본으로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아갈 때 정작 살아 있는 독립운동의 역사는 조용한 집에서 말없이 낙엽 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 남구 방림1동 살고 있는 이준수 할아버지는 광복군 2지대 3구대에 입대해 일제에 맞서 독립 전쟁을 수행했다.

김구와 김원봉이 살아 있던 시대에 그들과 함께 일제에 맞섰다. 우리는 김구, 김원봉을 만날 수 없지만 이준수는 만날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학생들은 살아 있는 역사를 곁에 두고 밖으로만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광주시교육청 공보실에서 근무할 때인 지난해 설 명절, 같은 부서 직원들과 애국지사인 이준수 할아버지 댁에 세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간 적이 있다. 주관적으로 봤을 때 그의 집에서는 외로움과 쓸쓸한 분위기가 풍겼다.

흐르는 세월은 광복군 할아버지의 얼굴에 깊은 주름을 남겼다. 거동 역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준수 할아버지의 미소 하나만큼은 더없이 멋졌다. 밝은 미소와 함께 내민 그의 손은 유독 따스했다. 그날 그와 나눈 악수가 잊혀지지 않는다.

광주시교육청은 중국과 일본으로 학생들을 보내 역사와 미래를 배우는 교육 과정을 다수 운영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원지인 지역 학생들이 현지에서의 역사 교육 이후 돌아왔을 때 ‘아! 성장했구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각 사업을 담당하는 교직원들도 이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다만 ‘집 근처 명소는 찾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광주에는 광복군 이준수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 그 시대를 살았던, 항일 현장을 누볐던 생생한 역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를 외롭게 두고 있다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우리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는 만나지 못해도, 살아있는 광복군과 악수 한 번을 나눔으로서 특별한 역사의식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난해 9월 지역 고등학생 80명과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광주교육청 동북아 평화탐방단은 현지 조선족 학생들과 만주 곳곳에 위치한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했다.

나도 그 여정에 함께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생들은 성장했고 달라졌다. 유적지를 돌아본 것만으로도 성장한 이 친구들이 살아있는 역사를 마주하게 되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교육이 단순한 학력 성장을 목표로 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구한말 ‘을사오적’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은 공부를 그렇게 잘했던 이른바 ‘엘리트’였다.

그들은 공부를 잘해서 ‘학력’을 나라 팔아먹는 데 썼다. 역사와 혼을 배우지 않고 ‘빈 공부’만 하면 그들처럼 된다. 역사도 반복된다. 2020년에는 달라졌으면 한다. 광복 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가.

남구 방림동에 살고 있는 이준수 애국지사만이 아니다. 이기환(96·국내 항일), 김영남(94·국내 항일), 노동훈(93·항일 학생 운동) 애국지사도 광주보훈병원과 보훈요양원, 방림동 등 곳곳에 살아 있다.

우리가 이분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 성지 순례가 별것인가? 살아있는 역사를 차례로 만날 수 있는, 학생들이 이들과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