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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이즈 홀스
2019년 12월 18일(수) 04:50
[김창균 광주예술고 교감]
올해 유행한 표현 중에 ‘라떼 이즈 홀스’(Latte is horse)가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할 때 사용하는 상투적 구문인 ‘나 때는 말이야’를 영어로 재치있게 표현한 말이다. 기성세대든 신세대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를 고집하면 결국 ‘꼰대’이거나 ‘젊꼰’(젊은 꼰대)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에 비해 성공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경험하면서 한계에 몰린 젊은이들에게는 이 표현이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기표(記標)가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한 취업 포털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젊은이 구직자들은 2019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을 꼽았다고 한다. 2위에 오른 ‘노이무공’(勞而無功, 온갖 애를 썼지만 보람이 없다)과 함께 현실의 벽에 대한 인식이 ‘자조(自嘲)의 언어’로 고착화하는 느낌이다.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시대상의 반영물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사회로 진출했던 386세대 이후 젊은이들은 ‘88만 원 세대’로 불렸다. 당시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를 곱한 금액으로, 어린 나이에 IMF 금융 위기를 접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상황을 은유한 말이었다. 이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해야 했던 ‘3포 세대’를 지나,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나아가 꿈과 희망마저 버려야 하는 ‘7포 세대’가 등장했다.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에서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N포 세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즉, 학교나 일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 청년 보고서(Investing in Youth: Korea)에 따르면, 국내 청년 니트 비율이 18.4%로 OECD 평균 13.4%보다 높고, 특히 대졸 이상 고학력자는 OECD 평균보다 2.5배나 높았다.

반면교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50대 장년이 된 자녀가 80대 부모의 고령 연금에 의존하는 이른바 8050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던, 과거 장기 불황기에 집안에 틀어박혔던 젊은이를 방치한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이 반성의 시점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행복 주택 광고에서는 “너는 좋겠다. 부모님이 집 얻어 주실 테니까”라는 말에 부유층 청년이 “네가 부럽다. 부모님 힘 안 빌려도 되니까”라고 응수하는, 흙수저의 박탈감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이 젊은이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었다. 최근 세대로 올수록 학력과 계층, 직업의 대물림이 심화되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개천에서 종 난다’로 희화(戱化)되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역사상 제일 행복했던 이는 노동 시간이 가장 짧았던 수렵 채집 시대인들이었다고 했다. ‘한국은 더 일해야 하는 나라’라는 지적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버리면 집단적 우울감이나 무력감이 사회를 짓누르기에 사회 불평등이 지닌 파괴력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점에서 앞의 취업 포털에서 진행한 또 다른 투표 결과는 고무적이다. ‘올해의 인물’을 투표한 결과, EBS 캐릭터 ‘펭수’가 방탄소년단(BTS)을 누르고 방송연예 분야 1위를 차지하였다. 비주류였던 펭수가 대세로 우뚝 선 이면에는 사장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는 등 기존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 ‘사이다 행보’가 있었다.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눈치 챙겨”, “다 잘할 순 없다. 잘하는 게 분명 있을 거다. 그걸 더 잘하면 된다”는 펭수의 어록이 고달픈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