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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 쌍둥이
2019년 11월 08일(금) 04:50
세상 모든 신화의 중심인물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영웅은 아마도 그리스신화의 ‘헤라클레스’일 것이다. 가장 힘센 사람의 대명사이자 최고신의 아들이라는 점은 어린이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스펙이다.

헤라클레스의 출생은 신화적인 면에서는 드라마틱하지만 가족 윤리 차원에서 보면 찜찜한 구석이 있다. 남편이 있는 여성이 신에게 속아 정조를 잃으면서 태어난 탓이다. 친모인 ‘알크메네’는 전쟁터로 떠난 남편 ‘암피트뤼온’이 돌아오자 3일 밤낮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암피트뤼온은 남편이 아니라 변신한 최고의 신 제우스였다. 제우스가 훑고 지나간 몇 시간 뒤에야 귀가한 진짜 암피트뤼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낌새를 채게 된다. 전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알크메네도 마찬가지.

알크메네는 산달이 되어 헤라클레스를 먼저 낳고, 다음 날 둘째 아들 ‘이피클레스’를 출산했다. 헤라클레스는 호적상 암피트뤼온이 아버지이지만 친부는 제우스이다. 특히 함께 태어난 쌍둥이인데, 아버지가 다르니 ‘이부(異父) 쌍둥이’인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몇 건 안 되지만 실제로 아버지가 다른 쌍둥이가 있다. 의학적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려면 드물지만 먼저 여성이 두 개의 난자를 배란해야 한다. 여기에 난자의 생존 시간이 24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배란 후 하루 안에 두 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을 때 동시 수정되면서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이부 쌍둥이는 DNA 차이만 있을 뿐 용모나 목소리 등은 보통 쌍둥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아버지가 다르다는 생각을 산모조차도 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은 피부색 등으로 인한 미묘한 차이나 이혼 시 양육권 또는 양육비 지급 등을 놓고 친자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쌍둥이의 아버지가 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얼마 전 대법원이 아버지의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법적으로 친자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냈다.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가족 해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반영한 고민이 엿보이는 판결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