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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왜 디자인비엔날레를 하는가
2019년 11월 06일(수) 04:50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공무원 아파트로 불렸던 친구의 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내가 살던 단독주택과는 너무도 달랐다. 우선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마당 구석이 아닌 거실 한쪽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뿐인가. 주방 싱크대나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틀면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매일 아침 물을 데우지 않아도 욕실에서 편하게 온수로 머리를 감는다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엄마한테 아파트로 이사가자고 졸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71년에 발표된 고 최인호 작가의 ‘타인의 방’은 당시 주거공간으로 붐이 일기 시작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인간 소외의 문제를 특유의 감성으로 형상화 한 소설인데, 아파트의 효시 격인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그도 그럴것이 1971년은 그 시절 기준으로 초고층 아파트였던 12~13층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완공되면서 중산층의 신 주거양식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광주 시민들에게 아파트는 일상을 넘어 ‘피로’와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 듯 하다. 실제로 지난해 말 현재 30층 이상 고층건축물이 26곳에 170개동이 있으며, 이 가운데 아파트가 22곳 160개동에 달한다. 특히 현재 재개발·재건축 등을 통해 건립중이거나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 상당수가 30층 이상이라고 하니 ‘아파트 공화국’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문제는 이들 고층 아파트들이 모두 ‘성냥갑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공공 건축물이나 도시 경관 역시 ‘무채색’이 대부분이다. 몇년 전 도시의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광주의 관문인 광천동 터미널 앞에 건립된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광주의 정체성과 문화도시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건축물은 극히 드물다.

2019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50여 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주 막을 내렸다. 지난 2005년 창설된 디자인비엔날레는 도시디자인 개선과 디자인 산업 부흥을 기치로 2년에 한번씩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하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광주의 도시풍경은 별반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무분별한 건축 허가와 행정으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최근 디자인비엔날레 부대행사로 열린 ‘2019 국제도시디자인 포럼’은 이런 도시건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자리였다. 이날 외국에서 참가한 디자인 전문가는 “체류기간 둘러본 광주의 아파트와 공공건축물 어디에서도 디자인 비엔날레의 개최지다운 면모를 느끼기 어려웠다”고 꼬집었다.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디자인은 이제 도시의 경쟁력이 됐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공재이다. 그렇다면 ‘광주는 왜 디자인 비엔날레를 개최하는가’. 정녕 디자인비엔날레의 ‘효과’는 없는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냉정하게 되물어봐야 할 때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