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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각성
2019년 11월 04일(월) 04:50
대중이 ‘깨어남-각성(覺醒)’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사회를 지탱해 온 기존 운영 방식이 잘못되어 있는 가운데 새로운 변화가 생겨야 한다는 사실을 대중이 깨닫기 위해선 ‘폭발력과 상징성이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대중이 각성을 통해 ‘새로운 사회 운영 시스템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선 기존에 사회를 유지해 왔던 힘보다 훨씬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성공하면 ‘혁명’으로 칭송받는 이 에너지는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무산되면 ‘폭력·시위 사태’ 정도로 폄훼되곤 한다. 그럼에도 일단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의 씨앗’이 대중의 뇌리에 심어지는 순간, 그 씨앗은 ‘변화에 대한 갈망’을 비료 삼아 무럭무럭 자라게 되고, 결국 혁명은 기정사실이 된다.

칠레에서 일어난 최근 시위 사태는 낡은 사회 시스템이 ‘대중의 각성’으로 어떻게 위기에 처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손꼽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위 1%의 부자들이 나라 전체 부(富)의 26.5%를 독점하고 있는 나라다. 하위 50%의 국민이 겨우 2.1%의 부를 나눠 갖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유지해 온 것이다. 40여 년 전부터 이어진 공공서비스 민영화로 연금은 턱없이 적고, 의료비와 전기·수도 요금 등은 지나치게 비쌌다.

만성적인 불평등과 가난에 좌절하고 무뎌졌던 칠레 국민을 각성시킨 것은 바로 지난달 초 정부가 발표한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다. 학생이 주축이 된 대규모 시위대는 ‘칠레가 깨어났다’(Chile Desperto)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연금과 의료비 문제, 교육과 세제 등 사회제도 전반의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하철 요금 50원’이 칠레 국민을 각성시키고 사회적 에너지를 폭발시킨 뇌관이 된 셈이다.

칠레뿐만 아니라 우리도 박근혜 정권 당시 ‘비선 실세 최순실’이 대중의 각성과 촛불 혁명을 이끌어 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대중의 각성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기득권 세력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기존 정치권이 항상 긴장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