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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광주항쟁 40주년 민중들 이야기 늦출 수 없었다”
본보 연재 다큐소설 ‘광주 아리랑’ 정찬주 작가·삽화 이정기 화가
정찬주 “5·18 정면으로 그린 소설…고통스럽지만 행복해”
이정기 “민초 역사는 미래의 유물…소설 느낌 살리려 고민”
2019년 10월 22일(화) 04:50
정찬주 작가 집필실 ‘무염산방’(이정기 작)
담소를 나누는 정찬주 작가(오른쪽)와 이정기 화가.








광주일보는 내년 창사 68주년과 5·18민주화운동 40돌을 맞아 정찬주 소설가의 다큐소설 ‘광주 아리랑’을 지난 9월부터 연재 중이다. 정 소설가는 1980년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일별로 전개되는 광주 항쟁 기간 해당 날짜마다 매회 2회씩, 그리고 계엄군 만행이 극에 달했던 2~3일은 3회로 연재하고 있다.

정찬주 소설가와 삽화를 그리는 이정기 화가가 최근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 자락 ‘이불재(耳佛齋)’에서 만났다. 초면이었지만 지면을 통해 서로의 작품을 봤던 터라 두 사람 사이에는 이내 친근감이 돌았다.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의 위력이다.

가을 초입의 이불재(耳佛齋)는 고즈넉하다. 산중의 가을은 도시보다 더 빨리 오는 느낌이다. 조금씩 물이 들기 시작한 나무와 주위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잔잔한 느낌을 준다. 이불재. 불어오는 바람에 귀(耳)를 씻고 부처(佛)의 경지를 맛보는 집(齋)이라는 뜻이 다함없이 좋다. 시시콜콜한 세상의 번다한 말들은 저만치 바람결에 사라져버릴 것 같다.

‘집필중’이라는 사립문에 걸린 문구가 수행하듯 글을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예의 편안한 미소로 정 작가는 기자와 화가를 맞이했다.

올해는 정 작가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한지 20년이 되는 해. 작가는 산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벗 삼아 창작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세상사에 거리를 둔 전형적인 예술가의 이미지지만, 그렇다고 교류까지 차단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에게 직접 찻물을 우려 차를 끓이고 담소를 나눈다.

정 작가는 “그림 속에서 화가의 고심이 많이 느껴진다”며 “내가 생각했던 각 지점의 장면과 그림의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놀랄 때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이정기 화가는 다소 수줍은 표정으로 “혹여 제 그림이 선생님의 소설에 누가 될까 많이 부담이 된다. 광주의 역사는 우리 후손들 미래의 역사가 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 작가는 그동안 ‘천강에 비친 달’, ‘법정스님의 뒷모습’, ‘이순신의 7년’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펴냈으며 지난해에는 광주일보에 정찬주의 유럽예술기행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다.

장성 출신의 이정기 화가는 전남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반추적시선 Ⅱ’등 수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지난 2015년에는 제21회 광주미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소설 ‘광주 아리랑’은 6회(5월 16일 ‘횃불시위’)까지 연재가 된 상태다. 소설은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관계로 음니버스 형식을 띤다. 장편소설의 방식을 원용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팩트를 기반으로 하되, 작가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가미했다.

“이번 소설 ‘광주 아리랑’은 다수 민초들이 끌어가는 이야기다. 날짜에 따라 주인공들이 달라진다. 시작은 단조로 시작됐지만 나중에는 회오리가 치듯이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이 있다. 아마 5월 25일, 26일, 27일 쯤에는 그동안 나왔던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서사 전면에 나올 것 같다.”(정찬주)

“컬러를 절제하며 의도적으로 흑백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글과 그림의 이미지가 상통되는 어느 순간에는 과감하게 색을 쓸 것이다. 전체적으로 컬러를 제한한다 해도 소설의 느낌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이정기)

정 작가는 첫 회분을 화가가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창가에 비친 눈동자’가 주는 강렬한 그림이 1회를 상징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설 전 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창가에 드리워진 눈동자는 증언 외에도 당대의 진실을 집요하게 포착한다는 차원 높은 뜻을 담고 있다. 이 작가는 “우리의 모든 것은 미래의 유물로 남는다”는 점에서 광주의 5월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80년 5월의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대의 역사를 반드시 기록할 필요가 있다”며 “‘광주 아리랑’은 현대사의 비극을 가장 정치하면서도 극명하게 그려낸 소설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제는 광주민중항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할 분기점에 와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대학생회 간부와 교수, 종교인 등은 지속적으로 조명돼 왔으며 몇 년 전부터는 개인의 평전 등도 발간되고 있다.

정 작가는 “재조명에 있어 소설화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며 “내년이 항쟁 40주년인데 당시 최대 피해자인 근로자와 빈민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실명으로 다큐소설을 전개하는 까닭은 근로자와 빈민 또한 오늘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광주민중항쟁의 엄연한 실존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번 소설을 구상하기 직전 정 작가는 올 2월에 인도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호랑이 모양의 조각상을 구입해왔다며 웃었다.

“요즘은 소설을 쓰면서 호랑이한테 물어뜯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심리적으로 더 고통스럽다.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 들어가다 보니 마치 내가 당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고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청심환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소설을 쓰기 어려울 정도다.”(정찬주)

“매회 삽화를 그리면서 핵심이 무엇인지 뽑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물어볼 수도 없고, 그저 나름대로 고민의 극단까지 가본다. 그러다보면 번뜩 이미지가 떠오른다. 80년 광주를 겪은 이들이 우리의 부모, 형제자매라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이정기)

두 작가의 대화는 집필실에서 나와 작은 정원을 거닐면서도 계속됐다. 예술가 특유의 이심전심이 느껴졌다.

사립문을 나서는데 “소설을 쓰는데 게으름을 피우면 호랑이 조각상에 물어뜯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는 정 작가의 말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