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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청바지와 맥주
2019년 10월 16일(수) 04:50
지난달 24일 오후, 한 포탈사이트의 ‘실검’에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10월3일~12일·BIFF)가 떴다. 개막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무슨 일이지? 궁금해 클릭했다. 그러자 동시에 수많은 매체에서 다룬 BIFF 기사들이 모니터 화면에 쏟아졌다. BIFF 조직위원회가 폐막식 MC로 배우 태인호와 이유영을 선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네티즌들은 조직위원회의 발표와 동시에 등장한 ‘따끈따끈한’ 뉴스에 ‘좋아요’를 누르며 환호했다. 일부 기사에는 ‘영화제 관람후 가 볼 만한 부산 명소를 알려 달라’는 등의 댓글도 달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번엔 ‘진주 유등축제’가 포털 실검에 올랐다. BIFF와 차이점이 있다면 축제 전후로 태풍 ‘미탁’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자 개최 여부를 점치는 기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예정대로 개최된다는 뉴스에서부터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될 것이라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유등축제에 대한) 네티즌들의 애틋한 마음이었다. 한 블로거는 ‘미탁’이 진주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소식에 자신의 블로그에 작년 축제 사진을 올려놓고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랐다. 또 다른 이는 진주 남강을 배경으로 찍은 인증샷을 자랑하며 ‘진주행’의 의지를 내비쳤다. 왜 유등축제가 5년 연속 문광부로부터 글로벌 육성 축제로 선정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는 멀리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의 열기를 접했다. 뮌헨 출장길에 ‘일부러’ 행사장을 찾았다는 지인이 카톡으로 보낸 사진에는 빅텐트 안에서 맥주잔을 들고 춤을 추는 수천 명의 흥겨운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순간, 평소 술과 거리가 멀지만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졌다. 200여 년간 ‘맥주’ 하나로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글로벌 축제의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바야흐로 ‘축제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본격적인 가을인 9~10월에는 광주·전남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독특한 테마와 콘셉트를 내건 축제 한마당이 펼쳐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광주에서만 디자인비엔날레, 광주프린지페스티벌, 추억의 충장축제, 광주세계김치축제, 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영산강서창들녘억새, 굿모닝! 양림 등 색깔 다른 축제 10여 개가 진행됐거나 개막을 앞두고 있다. 한해 40여 개의 축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맘때에 몰려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축제다운 축제’는 몇 개나 될까. 정체성이나 상품성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지역축제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위에서 열거한 BIFF, 진주유등축제, 옥토버페스트처럼 관광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핫한’ 축제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난달 7일 개막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보자. 실험성 강한 순수 예술 비엔날레(광주비엔날레)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색채가 강한 디자인축제이지만 관람객 수는 2년 전인 2017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하루 평균 5800명에서 올해는 2000여 명으로 급감한 것이다. 디자인비엔날레를 주관하는 광주디자인센터는 중·고생들의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면 단체 관람이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언제까지 학생 관람객 수에 의존할 것인지 안쓰럽다. 물론 영화라는 대중적인 장르의 힘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개막전부터 MC 선정, 상영작 라인업, 부대행사 등 모든 게 ‘뉴스’가 되는 BIFF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아트페스티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BIFF 보다 1년 먼저 창설된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국내외 언론 매체나 미술계에서 다뤄지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든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과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전당 인근 5·18 광장과 금남로 일대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프린지페스티벌도 한 해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정성’에 비해 전당의 관객 유입 효과는 미미하다. 최근 전당의 방문객 수가 정체되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폐막한 추억의 7080충장축제는 지속 가능한 축제의 가능성을 보여 준 현장이었다. 일부 보완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지만 축제의 성공 요건인 ‘재미’와 ‘흥행’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16년 축제의 모호한 정체성으로 인해 문광부로부터 ‘최우수’에서 ‘우수’ 축제로 강등된 굴욕을 겪었지만, ‘7090’으로 세대를 확장하고 ‘동구에서 아시아로’ 지역을 확장하는 등 심기일전한 덕분에 지난해 최우수축제로 원상복귀했다. 특히 청바지라는 드레스코드를 도입하고 거리 퍼레이드, 아시안데이 등 체험 콘텐츠를 보강한 점이 통했다. 실제로 행사장 주변에는 올해 처음 선보인 대형 청바지 조형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청바지족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매년 우리나라에선 3000여 개의 축제가 열리지만 일부 축제는 불과 몇 회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기 일쑤다. 반면 BIFF나 유등축제 등은 탄탄한 기획력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통해 도시를 살찌우는 관광 자산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잘 만든 축제’는 시민들의 삶과 도시의 품격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독특한 볼거리와 실속이 없는 축제는 돈과 에너지를 축내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축제의 옥석(玉石)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