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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의 장외투쟁을 보며
임동욱 서울취재본부장
2019년 05월 08일(수) 00:00
자유한국당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좌파 독재 타도를 외치며 ‘투사’ 코스프레에 나서는 지도부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지난 3일 광주를 방문했다가 환영 대신 ‘물벼락’을 체험한 황교안 대표의 언급은 그 정점이다.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전국 순회 투쟁에 대한 글을 올리고 “광주에서는 특정 단체 회원들의 거친 항의도 있었지만, 일반 광주 시민은 ‘제발 좀 살게 해 주십시오’ 그 외침뿐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광주 시민 그 누구도 ‘제발 좀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외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5·18 진상조사위 출범을 외면하고 있는 한국당에 대한 항의가 있었을 뿐이다.

황 대표는 이날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정상적인 집회가 어려워지자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역무실 안으로 피신한 뒤, 5월 어머니회 등 5·18 유가족들을 피해 플랫폼으로 연결된 다른 문을 이용해 빠져나갔다. 그런데도 ‘제발 좀 살게 해주십시오’라는 외침뿐이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광주가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도시 아닌가. 민주주의를 지켜 내기 위해 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목숨을 건 투쟁으로 맞섰다. 정부 공식 통계로도 사망 및 행방불명자가 181명, 부상자는 2762명이나 된다.

상처는 깊고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물론, 자유한국당도 광주에 올 수 있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5·18 망언 파동 이후,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징계도 없었다. 5·18 진상 규명과 왜곡 처벌은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인식과 공감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를 방문, 장외 투쟁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의 광주 방문에 의도적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광주 시민의 반발을 예상하고 ‘보수 결집’을 염두에 둔 행보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허무맹랑한 ‘음모론’이라고 펄쩍 뛰지만 그간 보여 왔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감안하면 나름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자유한국당의 ‘독재 타도’라는 슬로건도 오랜만에 듣는 낯설지 않은 단어지만 뭔가 어색하고 주객이 바뀐 듯한 느낌이다. 그동안 독재 타도의 대상은 군사 정권이나 이를 계승한 자유한국당의 전신 정당에 주로 사용되던 단어였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과 야 3당이 지정한 패스트트랙 법안이 ‘좌파 독재’로 가는 길이라며 이를 막아 내야 한다고 장외 투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불만이야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를 ‘독재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독재 타도’를 외치기보다는 지금 자유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시대와의 공감이 아닌가 싶다. 또한 지금 요구되는 것은 보수 대개혁을 통한 수권 정당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제대로 된 청산은 없었다. 리더십은 실종됐고 오히려 친박(친 박근혜)세력이 되살아났다. ‘태극기 부대’ 등 극우 세력에 휘둘리는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제1 야당이지만 한반도 평화, 4차 산업 혁명, 빈부 격차 해소 등 시대적 과제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유’ ‘기회’ ‘평등’이라는 보수적 가치를 시대에 맞게 설정하기보다는 여전히 ‘반공’ ‘친미’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과거의 틀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이다. 논란이 된 선거제·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도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 막무가내식 반대(공수처)를 하거나 현실성 없는 대안(선거제)을 던지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장외 집회를 통한 극우 보수 결집으로는 한국당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민심과 시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착시 현상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만만치 않다. 여야가 대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하게 협력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은 한국당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5·18 망언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징계 및 조속한 진상조사위 구성 등을 통해 한국당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