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종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 선임 행정관] 끝나지 않은 촛불, 시대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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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종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 선임 행정관] 끝나지 않은 촛불, 시대 교체
2019년 04월 15일(월) 00:00
4·19, 5·18, 6·10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항쟁들은 민주주의를 앞당겼지만 주체적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 반면 ‘촛불 항쟁’은 문재인 정권의 탄생으로 귀결되면서 처음으로 성공한 항쟁이 됐다. ‘촛불 정부’라는 명명은 그에 합당한 조응이며,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정권 교체’가 촛불 항쟁의 정치적 결과라면, ‘시대 교체’는 촛불 정부의 역사적 과제다. ‘결과’는 국민과 정부가 공유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과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엇갈린다. 국정 지지율 하락은 여기서 비롯된다.

‘과제’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즉 비전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적폐 청산과 같은 ‘어제’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혁신과 같은 ‘내일’의 문제이다. ‘내일’의 문제에 관한 국정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통과 토론이 왕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크게 부족한 편이다.

전선이 넓은 전장에서는 약한 곳이 있게 마련이다. 정권 교체 이후 정치 전선은 단단해졌다. 평창올림픽 당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서 ‘뜻밖의’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남북 문제도 보수 정권 10년 전의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정인 교수 등의 역할이 컸다.

약한 고리라면 초기 탈원전 논쟁이었고, 점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등으로 쟁점이 확대되었다. 이른바 경제 전선이 고지전의 대상이 됐다. 경제 전선이 약한 이유는 기업, 노사 등 주체가 복잡하고, ‘사적 영역’이라는 국민의 인식과 태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 경제는 ‘나’의 문제라는 프레임은 낡았다. IMF 경제 위기 때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성장과 분배가 좌우 이념의 상징처럼 치부되는 것도 철 지난 등식이다. 성장 없는 분배는 나락이고, 분배 없는 성장은 지옥이다. 혁신을 통한 성장, 분배를 통한 포용은 그런 배경의 담론이다. 그러나 미래 담론의 지배력이 미약하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정치적 경쟁 세력으로 자유한국당의 부활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국정 농단세력의 부활은 끔찍한 일이다. 탄핵 부정, ‘일베’ 수준의 막말, 5·18 북한 개입설, 반민 특위 발언 등은 가히 ‘적폐의 부활’이라 할 만하다.

진흙탕은 흰옷과 검은 옷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자유한국당의 전략은 마치 트럼프의 ‘반(反) 정치’처럼 진흙탕 싸움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짜뉴스나 극우적 선동, 말초적 정쟁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보수를 가장한 ‘좀비 보수’의 망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는 것이다.

촛불이 정권 교체에 그치지 않고, 한국 정치의 민주적 고도화를 촉진할 것이라 믿었던 국민들에게는 실망스런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충분히 보상받은 민주당과 정부가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한 후과이기도 하다. 혁신 세력이 혁신을 중단하면 또 다른 기득권처럼 인식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새겨야 할 시점이다.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이듯 촛불 항쟁은 우리 국민의 큰 자부심이다. 항쟁의 경험을 공유한 시민의 대거 등장은 민주주의 발전에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 그런 시민의 힘을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촛불 정부의 소명이다.

항쟁이 끝나고, 정권 교체가 완성된 이후 시민은 광장에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퇴각’이 아니라 ‘일상의 광장’을 열도록 섬세하게 배려했어야 한다. 비단 정권 연장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시대 교체는 끝나지 않은 촛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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