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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재 율곡연구원장] 곰배령 야생화는 누가 대표하는가
2019년 04월 09일(화) 00:00
우리 정치 문화 개혁의 시금석이라 평가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싸고 목하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모름지기 개혁을 위한 논쟁은 뜨거울수록 좋으니까 이런 시끄러움을 딱히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유감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논쟁의 방향이 이 제도가 우리 정치 문화를 얼마나 바꿀 것인가 하는 점보다 정당별 유불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이런 속마음은 제도 도입을 가정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대입하여 예측한 시뮬레이션 결과들을 아전인수적으로 해석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덕을 보는 것은 반대편임을 은근히 부각시킴으로써 논의가 진영 대결 구도로 짜이도록 유도하는 일부 언론들도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첨예한 관심과 달리 이 부분은 새로운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선거는 유권자의 지지를 더 받는 쪽이 한 석이라도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정당들은 현재의 지지도나 지난 선거의 득표율에 매달려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간에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할 일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관련하여 우리가 정작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일부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국회의원 대표성의 지역적 편차의 심화 문제이다.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묻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지만, 대의민주주의란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이것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이른바 ‘여야 4당 합의안’을 따를 경우 지역구 의석수 축소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불똥은 인구가 적은 농어촌과 산간·도서 지역 선거구로 튈 것은 자명하다. 여기에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2:1을 넘으면 안 된다고 판결한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이 판결은 만약 어떤 기초 지자체의 인구수가 최대 선거구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면 그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몇 개가 되었든 인근 지자체와 계속 통합되어야 함을 뜻한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강원도의 경우, 현재 5개 기초 지자체가 한데 묶여 있는 선거구가 2개나 되는 상황이 무색하게 6개 지자체가 하나의 권역으로 묶이는 공룡 선거구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는 이유이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구가 인구수를 기준으로 획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이제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획정하는 단계를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 절벽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고, 이 추세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곳이 농어촌과 산간·도서 지역인 상황에서 여전히 인구수를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 당위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대로 간다면 10개의 기초 지자체가 하나의 선거구로 묶이는 일이 생길 날도 멀지 않다고 하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익히 알려져 있듯이, 국가를 이루는 3요소는 영토·국민·주권이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그런 요소들이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주요한 입법적 사항들을 처리하는 대표 기관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국민’만 아니라 ‘영토’도 대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회의원이 국민만 대표한다면 인제 곰배령의 야생화와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과 신안 개펄의 세발낙지는 누가 대표하는가? 국회의사당에서 이런 것들을 대표하여 그 가치와 보존 방안을 역설하는 대표자는 없어도 되는 것일까?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기준에 선거구 간 인구 편차뿐만 아니라 면적 편차도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얽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제대로 된 정치란 단순히 사회적 이해관계의 조정을 넘어 구성원들의 삶에 대한 그런 숙고된 전망까지 함축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