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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 화순 용현사 주지스님] “하심(下心)하란 말이오”
2018년 10월 19일(금) 00:00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뒷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양 시민들에게 90도 각도로 머리 숙여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다. 지도자를 우상화 하는 북한 체제에서는 상상도 못할 장면이라는 설명이 항상 뒤따른다. 그리고 크게 언급되진 않았지만 서투른 하트 표시를 날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손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떠받치는 리설주 여사의 모습도 독특하다.

식사하는 사람 불편하게 자꾸 물어보지 말라고 슬쩍 옆구리 쿡 찌르는 우리 김정숙 여사와는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의 모든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표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표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권력은 너무나 왜소하여 우리들은 한 표 만큼의 권력을 쉽게 간과하고 있다. 흩어져 있는 ‘한 표의 권력’들을 모아서 덩치를 키워야 비로소 권력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정치인은 타인에게 ‘한 표의 권력’을 구걸하여 자신의 권력을 키우고 그렇게 키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한 표 권력을 구걸하는 정치인은 최대한 자신을 낮추어 유권자에게 머리를 숙인다. 선거철에 후보자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나에게 당신의 ‘한 표 권력’을 달라고, 인사하고 악수하고 호소하는 것이 전부다.

아무리 ‘한 표의 권력’이 보잘 것 없다지만 유권자들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권력을 정치인에게 적선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남의 마음을 사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자신을 낮추어야 자신을 높힐 수 있다. 하심(下心)만 잘해도 성공한 인생이다. 그만큼 하심은 힘들다. 그래서 내 주머니 속의 ‘한 표의 권력’ 에 머리 숙인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유권자들은 기꺼이 ‘한 표의 권력’을 내주는 것이다. 선거철의 정치인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진리다.

하심이 얼마나 힘든지 여실히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는 명절날의 덕담이다. 학생 때면 공부는 잘하냐, 대학 졸업하면 취직은 언제 하냐, 취직하면 결혼은 언제 하냐,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을 거냐, 집은 장만했냐, 애를 낳으면 하나는 외롭다 둘째는 언제 낳냐… . 이렇게 어른들의 잔소리 같은 덕담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어른들의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는 ‘내가 이 집안의 어른인데…’라는 어른 코스프레에 취한 나머지, ‘나’에 대한 보호막이 벗겨져 버린 결과이다. ‘나이를 먹으면 주머니는 열고 입은 닫으라’는 격언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물론 애정이 없다면 잔소리도 없다. 사랑하니까 기대하고 바란다. 이 모든 것이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해줄 것을 강요하기 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아랫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격려해야 마땅하다. 지위가 높을수록 애정이 깊을 수록, ‘나’ 역시 공고해지고 커지기 마련이다.

하심이 힘든 건 ‘나’라는 놈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다. ‘남’이 있으니 ‘나’도 있고, ‘나’가 있으니 ‘남’도 있다. 그런데 ‘나’는 ‘나’밖에 없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래서 ‘남’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항상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나’를 추켜세우려 한다.

하심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를 숙이고 싶은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하심이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다 보면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경지, 즉 ‘나’가 사라진 경지에 이른다. 하심(下心)하면 무아(無我)에 이른다. 하심이야말로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수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시민들에게 항상 겸손한 이유를 나 같은 일개 시민이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분임은 분명하다. 잠시 선거철에만 머리를 숙이는 정치인과는 격이 다르다. 이 정도는 나도 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서 하심을 배우는 우리는 정말 행복한 백성이다.

“하심하란 말이오!” 은사 스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