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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찬바람 속 열기, ‘김지영 씨 현상’
2017년 12월 19일(화) 00:00
이마에 닿는 찬바람이 싸하게 정신을 깨운다. ‘삼한사온’이 깨지고 ‘십한이온’으로 변한 현상은 강추위가 열흘 이상 이어지다 이틀 정도 따뜻해지는 것이다. 이런 기후 변화 원인은 지구온난화 탓인데, 이런 지구 생태계 변화가 나 자신을 포함한 인류 탓인 것을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하여 찬바람을 타며 맑아지는 머리로 한 해를 돌아보노라니 뜨겁게 터져 나온 젠더 이슈들이 마음에 불을 지른다. ‘2017년 신드롬’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이 소설은 ‘올해의 작가상’,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예스24의 ‘올해의 책’ 등등…. 연말에 몰린 여러 수상을 기록 중이며, 영화화 결정으로 머지않아 생생한 시청각 텍스트로 귀환할 기대작이기도 하다.

2016년 가을바람을 타고 출간된 이 소설은 2017년 내내 와이파이처럼 공명의 폭을 확대해 나가 소문 잘 나는 정치권 연말 선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김지영 현상’으로도 불리는 이 파장 저변에 남성들도 등장해(더 나은 한국 사회 변화를 위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연대하는 열기도 일어나고 있다. 그 열기는 2004∼2005년을 정점으로 일어났던 호주제 폐지 사회 문화 운동의 제2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0여 년에 걸친 인생 여정



소설 제목 그대로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 씨는 대학 졸업 후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다가 31세에 대학 선배와 연애결혼을 한 후 딸 하나를 낳아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이다. 그런데 그녀가 2015년 가을 어느 날부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왜 그녀는 남편을 ‘정 서방’이라고 부르고, 시부모님 앞에서 친정어머니에 빙의된 현상을 보인 것일까?

그 원인을 정신과 의사와 함께 환자인 김지영 씨 회고담을 통해 탐사해 내는 추적 과정을 보여 주는 목차도 르포문학 보고서처럼 연대순이다. ‘2015년 가을/ 1982년∼1994년/ 1995년∼2000년… 2016년’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30여 년에 걸친 그녀의 인생 여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겉으로 보면 바깥사람인 남편이 벌어 오는 수입으로 육아와 가정 살림을 하는 안사람으로 살아가니 안락해야 할 텐데 그녀는 앓고 있다. 아픈 원인을 추적해 가는 회고담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전통적 삼종지도(三從之道)의 근대적 변형이 소소한 일상 속 세뇌 효과 내면 심리 분석으로 펼쳐진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듯이’와 같은 대목이 그렇다. 이런 자동적인 서열 효과는 남녀 공학에서 남학생 번호가 먼저이고, 남학생이 먼저 발표하고, 여학생은 늘 그 뒤를 따르는 것에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우리식 남녀유별 근대화 과정의 이면이 뒤집어진다.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임신·출산 그리고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 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와 같은 대목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여성의 비혼화 경향과 1인 가족 현상의 밑그림을 자연스러운 소설의 흐름을 타고 공감하게 해 준다.

이렇듯 김지영이라는 평범한 30대 여성을 통해, 21세기에도 작동하는 봉건적 삼종지도 변형 효과는 젠더 관련 구체적 자료와 여러 기사들을 참조하며 객관적 거리를 두면서 불현듯 우리 자신을 조망하게 만든다. ‘호주제 폐지’ 관련 자료,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 통계 자료, ‘경력 단절 여성 지원 정책의 현황과 과제’ 포럼 자료, ‘성별 임금 격차’에 관한 OECD 자료 인용 대목이 그런 경우이다. ‘김지영’은 여성 이름뿐만 아니라 남성 이름으로도 붙여져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되는 것처럼, 김지영은 굳이 30대 여성이 아니어도 현재진행형인 우리 내면의 초상화와 오버랩된다.



한국 여성 특유의 병 ‘화병’



그녀가 미쳐 가는 해리장애 증상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미친년 프로젝트’ 예술 작업 시리즈와 연결된다. 1999년부터 시작된 박영숙 사진작가의 성차별, 여성 혐오 고발 프로젝트는 ‘미친년·발화하다’사진전(아라리오 갤러리, 2016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굳이 ‘미친년’이란 단어가 왜 핵심어로 공유되는 것일까? 겉으로 드러나지 못한 채 속으로 응축돼 터져 나오는 ‘화병’이 한국여성 특유의 정신병으로 국제 심리학 무대에 등장하는 문제는 뜨거운 과제이다. 적폐 청산 열기 속에 분열적인 근대화 풍경으로 내면화된 성차별 관습도 핵심적 해결 과제이다. 이런 열기를 타고 한국 사회가 평등 사회로 진화하기를 뜨겁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