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 정약용이 꿈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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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 정약용이 꿈꾼 나라
2017년 11월 21일(화) 00:00
100년 전,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은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라를 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약소국의 뜻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나라의 꿈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100년이 채 되지 않아 각국의 공산주의 정권은 민주화 요구에 직면하여 종식되었다. 인간과 제도에 대한 이상과 과신이 인간을 억압하는 경직된 제도를 만들어 내다니. 이제는 인류에게 경험적 지혜를 주는 역사적 유산으로 남았다.

200년 전, 1817년 유배지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은 ‘경세유표’를 일단락 지었다.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한 제도적 구상이다. 정약용은 자신의 이상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런데 ‘경세유표’는 군주제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결코 혁명적인 책은 아니었다.

20년 전, 우리 사회는 외환 위기의 충격을 겪었다. IMF 처방에 따라 정상화를 조속히 이뤘지만, 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달라졌다. 기업 차원의 효율성 추구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실업과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나타났다. 평생직장이란 것은 사라졌다. 개인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사회는 분야마다 양극화의 폐해가 심화되었다.

2017년이 곧 저물어가는 이즈음, 초고령사회·기술의 발전 등이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리뿐만 아니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삶의 불안감은 심화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 이제까지의 방식이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문제가 점점 심화된다면, 뭔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마침 지난 금요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경세유표’ 저술 200주년 국회 세미나가 있었다. 저술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이 꿈꾼 나라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는 자리였다.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가기 전, 38세로 아직 관직에 있을 때인 1799년에 쓴 중요한 글이 ‘원목’과 ‘전론’이었다. 목민관이 민을 위해 있음을 선언한, 정치 분야의 핵심적 글이 ‘원목’이라면, ‘전론’은 목민관이 민을 잘살게 할 임무를 밝히고 ‘여전제’라는 토지 제도를 제시한, 경제 분야의 핵심적 글이다.

‘전론’에서는 군주와 목민관의 임무를, 민의 자산(資産)을 골고루 마련해 다 함께 잘 살도록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여기에서 ‘병활’(竝活)! 함께 산다는 이 단어가 주목된다. ‘여전제’에서 주목할 아이디어는 첫째 농사짓는 사람에게 공적인 농토를 제공한다는 점이고, 둘째 일한 만큼 얻을 수 있게 하는 점이다. 정약용은 여전제의 시행을 궁구하면서 사람이 이익을 좇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전제했다.

정약용이 ‘전론’의 주장은 후일의 주장과 다르다고 말했지만, 구체적 실현 방안이 달라졌지 기본 아이디어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경세유표’에서는 상당한 분량을 전제(田制), 즉 토지제도에 관해 할애했다. 이는 요즘식으로 보면 일자리 마련을 위한 제도적 노력일 것이다.

‘경세유표’에서 정약용은 선비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일하는 사회를 도모했다. 심지어 국왕조차도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정약용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중간착취를 배제하고 효율적인 공적인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국왕은 공적인 존재로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국왕을 보좌하는 신료들도 당연했다. 정약용이 꿈꾼 나라는 모두 함께 일하고, 모두 함께 벌고,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였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일자리가 화두다. 질 낮은 일자리도 문제지만 그마저도 없다. 일자리는 공동체 구성원이 터 잡을 삶의 자리다. (박원재, ‘일자리와 삶자리’, 실학산책 2017.7.14. 참조) 일자리의 부족과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나 노동시간의 조정 등, 돈과 시간의 문제와 결부된 접근이 필요하다.

돈은 노동의 대가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수단이요, 소비 수요를 낳는 거시경제의 주요 요소이다. 돈은 돌아야 한다.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조화는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일과 돈과 시간이 모두 조화롭고 균형을 이뤄야 우리 공동체의 건강성이 회복될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최선이 반드시 공동선으로 귀착되지 않는다. 공동체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

지난 국회 세미나는 성황리에 마쳤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강진에 정약용의 사상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시설을 세우자는 주장도 나왔다. 정약용의 사상을 법고창신의 자세로, 열린 자세로 되새길 기회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나아가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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