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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2017년 10월 18일(수) 00:00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70년대 초·중·고 화장실이나 버스터미널 공중화장실마다 소변을 수집하는 하얀 플라스틱 통 옆에 쓰인 문구다. 가발이나 이쑤시개 외엔 변변한 수출품이 없던 때 사람의 소변에서 혈전을 녹이는 ‘유로키나아제’를 뽑아내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30여 년 전 상업고등학교 졸업반 담임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학급에서 10명 남짓이 은행에 취업하던 때였다. ‘홈커밍데이’(모교 방문의 날)라고 졸업 30년 만에 제자들의 연락을 받고 당시 근무했던 학교에 다녀왔다. 50대에 접어든 제자들이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사은회를 베풀면서 감사패와 꽃다발을 전달하는 행사였다. 1984년 당시 우리 반 학생 55명 중 집에 전화기가 있던 학생은 1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43명이 전화기 없어 비상연락망을 작성할 때 전화기 있는 학생을 지역별로 맨 앞에 세웠던 기억이 새롭다. 시계, 라디오, 재봉틀, TV 등이 가정환경조사의 단골 메뉴였던 시절, 집에 자동차가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재의 삶과 비교하면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이 끝난 195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다. 아프리카 ‘가나’ 수준이었다. ‘배 꺼질라. 뛰지 마라’던 시절, 허리끈을 졸라매고 김, 돼지고기, 토끼고기, 오징어 말린 것을 가지고 수출 길에 나섰다. 잔디 씨 수집이 방학 숙제였던 시절이었다. 그 결과 1964년 1억 달러 수출 달성으로 감격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이를 기념하여 ‘수출의 날’이 제정되었다. 이때부터 수출에 나라의 명운을 걸다시피 앞만 보며 달린 결과 50년 만인 2014년 5700억 달러 수출 달성으로 세계 제7위 무역 대국이 되었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외국인은 다 아는 데 우리만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잘사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동남아는 말할 것도 없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돈 벌어 잘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숫자가 200만 명이 넘는다. 그중 불법 체류자가 20여만 명으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2만여 명이다. 국적이 없어 이 아이들은 출생 신고도 할 수 없다. 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학교도 다닐 수 없다. 강제 출국당하지 않기 위해 방안에서만 키운다.

지금 우리 사회 저변에 ‘금수저’와 ‘헬조선’이란 말이 널리 깔려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의 급속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빈부의 격차와 각종 병폐를 지적한 말이다. 아직 우리 사회의 높은 상대적 빈곤의 벽을 볼 때 공감하는 바 크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세계 74억 인구 중 절반이 기아에 허덕인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눈먼 애국심보다 냉정한 평가가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을 제일 저평가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란 말이 있다. 김포∼제주 구간 항공 탑승객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항공 노선이라는 2014년 국제기구 발표가 있었다. 지난 추석 연휴를 해외에서 즐기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부드러운 정권 교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외국인들을 볼 때 가슴 뿌듯하다. 선진국들이 200년 이상 걸쳐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를 6·25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반세기 만에 압축적으로 이룬 대한민국이다. 지난 촛불 집회에서 100만 인파가 모여도 차량 파괴는커녕 거리 청소까지 말끔히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모범 국가로 세계적인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중남미까지 확산하는 한류 열풍을 보라. 우리는 기네스북에 오를 문화유산을 지닌 위대한 민족이다. 우리 자신을 너무 비하하지 말고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는 세계 시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