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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 교감] 봄을 볼 수 없어요
2017년 09월 05일(화) 00:00
어느 젊은 부부 집에 시어머니가 방문했다. 일주일을 계획했는데 한 달을 머물렀다. 시어머니를 내보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국을 대접하면서 우리가 막 다툽시다. 당신은 너무 짜다고 하세요. 난 오히려 싱겁다고 할게요. 만일 어머님이 당신 편을 드시면 내가 발끈 토라지며 그럼 가시라고 하겠어요. 내 말이 맞다고 하시면 당신이 버럭 화를 내며 떠나라고 그러세요.”

밥상이 왔고 말다툼이 사나워지자 아내가 말했다.

“어머님은 어떠세요. 국이 짜요 싱겁소?”

시어머니가 숟갈로 국물을 떠서 입맛을 다셔 보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 입엔 맞구나.”

시어머니는 절묘한 답변으로 쫓겨나지 않았다. 실제로 입맛에 딱 맞았을 수도 있지만 부부의 의도로 보아 싱겁거나 짰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중립이라는 절제된 감정을 말함으로써 난처한 상황을 잘 마무리한 것이다.

점심시간에 등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여학생 몇 명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수영장에 다닌다는 학생이 친구에게 ‘너도 살이 쪘으니 운동을 하라’고 권한 것이 다툼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작가 데이 셰퍼트는 말을 할 때 세 가지를 깊이 생각한 후에 당당하게 말하라고 했다. ‘첫째는 참말인가?, 둘째는 필요한 말인가?, 셋째는 친절한 말인가?’이다. 시어머니의 대답은 참말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하고 친절한 말에는 일치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근접하다. 참말(진실)이 아니어도 화평해 졌다. 학생이 친구에게 말한 ‘살이 찐 것’이나 ‘운동을 해야하는 것’은 참말이고 필요한 말이다. 그런데 셋째 친절한가 아닌가 즉 감정의 문제에 부딪쳐 불화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들은 살면서 대체로 사실을 말하고, 필요한 말을 하지만 감동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말 즉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친절하지 못한 말 때문에 상처를 준다. 이처럼 말이란 어렵고도 무섭다.

지금 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연일 말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위 벼슬 청문회에서 수년 전에 내뱉었던 자신의 말들이 되살아나 자퇴하는 사례가 많다.

교단에서도 교사의 말이 학생에게 큰 상처를 주고, 학생의 언행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교사가 늘어가고 있다. 강하게 한 말은 순간 시원할지 모르지만 더욱 거칠게 돌아오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말은 불씨가 되어 스스로를 태운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의 품격’을 쓴 이기주의 글이다. 흔하디흔한 교훈이지만 울림이 큰 한 문장이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여행은 가고, 살까 말까 망설이는 물건은 사지 말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지금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교수학습을 위해 스토리텔링 기법을 강조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데이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친절한(감동적인) 말이다. 단순한 팩트의 서술이 아니라 팩트를 바탕으로 삶과 연결된 이야기를 만들어서 공감하는 교수법이다. 명강사라고 소문난 분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그 배경이나 생생한 사례를 곁들여 구성지게 말하면 얼마나 절절하던가.

뉴욕 지하철에서 거지가 깡통을 앞에 두고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행인들은 무심하게 지나갔고 깡통에는 찬바람뿐이었다. 어느 행인이 다가와 팻말 뒷면에 무언가를 다시 써줬다. 그러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깡통에 돈을 넣고 온정어린 격려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심한 행인들이 따뜻한 이웃으로 변한 것이다. 팻말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지금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봄이 와도 봄을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