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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삼만 년을 살아남은 씨앗
2017년 07월 20일(목) 00:00
연꽃의 계절이다. 폭염과 폭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닫는 사이에 연꽃이 폭발하듯 피어났다. 성리학을 받들던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연꽃을 학문의 궁극 도달점의 상징처럼 여겼다.

애련(愛蓮)은 단순히 식물로서의 연꽃을 좋아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았다. 성리학의 바탕을 확립한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자 주렴계(周濂溪, 1017∼1073)가 남긴 ‘애련설’(愛蓮說)이 그 시작이었다. 천년쯤 전에 쓰인 ‘애련설’에서 주렴계는 연꽃을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럽지 않고, 맑게 단장했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었지만 밖은 곧으며, 덩굴지거나 가지를 어지러이 펼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아도 향기가 번져오는” 아름다운 꽃으로 예찬했다. 덧붙여 주렴계는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고까지 했다. 짧지만 연꽃의 특징을 적절하게 간파한 명문이다.

성리학을 따르는 유학자들은 주렴계의 ‘애련설’을 오래도록 읽으며, 자연스레 연꽃에 대한 온갖 상념을 키웠다. 더불어 선비들은 집 앞에 지은 연못에서 손수 연꽃을 키우며 연못을 애련지라 했고, 연못 앞에 정자에는 애련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덕궁 후원의 연못이 애련지이고, 그 앞의 정자 이름이 애련정인 것도 주렴계의 ‘애련설’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문인 김종후(金鍾厚, 1721∼1780)는 한발 더 나아가 ‘경련설(敬蓮說)’을 지었다. 단지 사랑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가히 공경할 만한 자연 대상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경련설에서 김종후는 “연꽃을 대할 때마다 반드시 옷깃을 바로 하고 얼굴빛을 고쳤다”고 했다. 꽃 한 송이를 만나기 위해 옷깃을 여미고 낯빛을 고쳐야 했다는 옛 선비의 자연관이 놀랍다.

조선의 선비들로서야 알 수 없었겠지만, 사실 연꽃은 생명체로서 공경하고도 남을 만큼의 놀라운 신비를 지녔다. 2010년 7월에 발표한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팀의 연구 결과도 그 중 하나다. 발굴 팀은 산성 터에서 연꽃 씨앗을 발견했다.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무려 7백 년 전인 고려 시대 때에 맺은 씨앗이었다. 연구자들이 씨앗을 수습해서 연꽃의 생육 조건을 맞추어 주자, 고려 때의 씨앗은 드디어 칠백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렸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으며, 마침내 7월7일에는 꽃을 피웠다.

오래된 씨앗을 개화시킨 우리나라의 첫 사례이지만, 나라 밖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된 연꽃 씨앗이 개화한 적도 있다. 일본의 도쿄에서 1951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도쿄대 운동장 발굴 작업에서 무려 2천 년 전에 맺은 씨앗이 발견됐고, 식물학자인 오가 이치로(1883∼1965)박사는 이듬해인 1952년 7월 18일에 핑크색 꽃송이를 피워내는 데에 성공했다.

연꽃보다 더 오래 살아온 생명도 있다. 지난 2011년에 발표한 러시아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다. 시베리아 툰드라지대의 지질 탐사 과정에서 발견된 다람쥐 굴 안에서 찾은 석죽과(우리나라의 패랭이꽃이 속한 식물군) 식물의 씨앗 이야기다. 실레네 스테노필라(Silene stenophylla)라는 학명을 가진 이 식물의 씨앗은 무려 3만 년 전에 맺은 씨앗으로 확인됐다. 이 씨앗 역시 함안 성산산성이나 도쿄대 운동장에서 발견한 연꽃 씨앗과 같은 방법으로 개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모든 식물의 씨앗이 이처럼 오래 살아가는 건 물론 아니다. 어떤 식물은 고작 1년을 넘기면 생명을 잃고 만다. 하지만 우리 곁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숱하게 많은 생명은 제가끔 자기만의 신비를 가졌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궁리해 왔고 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생명의 일부 사실을 하나둘 알아 가고는 있지만, 생명은 여전히 신비의 대상이다.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은 게 생명이다.

언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식물의 경우는 더 그렇다. 폭염의 계절에 폭발적으로 온 연못을 뒤덮고 있는 연꽃 한 송이를 찾아 길 떠나기에 앞서 ‘옷깃을 여미고 낯빛을 고쳐야’ 했던 조선의 선비 김종후의 이야기를 되새겨야 할 이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