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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광주시 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혼밥’하는 아이들
2017년 02월 22일(수) 00:00
어느덧 얼었던 흙도 풀리며 눅눅한 내음으로 봄을 알리는 해토머리다. 이미 남녘에서부터 매화의 화신(花信)이 전해지니, 곧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열고 훈풍에 기대어 꽃향기를 만끽할 때가 다가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편의점 등지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는 초등학생들이 늘면서 학생들의 사회성과 창의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학원 스케줄 때문에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컵라면 등으로 ‘혼밥’(혼자 먹는 밥)한다는데, 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현실을 보면 십분 이해가 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는 소비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돈에 있다는 현실 논리가 만들어 낸 슬픈 단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기사를 보며 예전 경험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봄 소풍으로 오르는 산길 곁에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가 있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라고 꼬드기며 점순이가 주인공을 쓰러뜨린 숲에 핀 꽃이 바로 그 꽃이라고 알려줬더니, 아이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동백꽃은 빨간데, 이건 노랗잖아요.”

소설의 배경인 강원도에 난대성 식물인 동백이 있을 리 만무한데, 알싸한 향기의 노란 동백꽃이라는 구절이 분명히 있음에도 아이들은 관상용으로 흔히 보는 빨간 동백꽃만 생각하고 있었다. 가지에서 생강 향이 나서 붙은 이름이고 열매를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하기에 동백나무라고도 한다고 설명했지만, 아이들의 흥미 밖이었고 산수유 꽃인 줄 알았다는 대답이 오히려 대견할 정도였다.

다양한 경험의 부족은 결국 지식의 편린(片鱗)을 이을 수 있는 종합적 사고력의 부재와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상황에서 마름의 딸과 소작인의 아들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뛰어 넘은 ‘해학’에 대한 정서 공유는 감불생심(敢不生心)이었다.

우리말글 연구에 평생을 바친 김수업 교수는 ‘사람’을 ‘삶을 앎’으로 풀이하였다. 배움이라 함은 ‘사람’되는 길인지라, 현실과 연계하여 삶을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방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과거와 달리 지식 정보의 가뭄보다는 홍수가 문제되는 현실에서는 삶과의 적합성에 기초하여 지식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단순한 지식과 기술 습득을 넘어서 인지적 측면과 비인지적 측면을 아우르는 종합적 역량을 키우는 배움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 옆을 볼 수 없는 경주마와도 같은 처지다.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놓여 있다지만, 기성세대의 욕구에 갇혀 어린 시절의 풍부하던 상상력을 잃고 앞만 보고 달리는 순응형 경주마로 키워지고 있다.

눈가리개를 떼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인생을 고민하고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어차피 눈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은 융합과 협업, 그리고 네트워크 시대로, 스펙보다는 직무 적합성, 다양한 사고와 경험이 중요한 시대이다. 최소한 ‘눈에 반짝거림이 없어지는 순간 뇌는 쇠퇴하기 시작한다.’는 경구가 시사하듯이, 배움을 질리게 만들어 내재적 욕망과 잠재적 가능성까지 억누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점순이는 자기에게 무관심한 주인공에 대한 복수로 닭싸움을 벌이지만, 주인공은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닭싸움에만 매달린다. 경주마로 키우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혼밥’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 교육’을 강요해서는 결코 미래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키울 수 없다. 사회 시스템을 탓하기 이전에 작은 실천으로 변화를 찾아야 한다.

조만간 산 언저리에 ‘노란 동백꽃’이 피어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산에 올라 알싸한 향기도 맡으며,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점순이와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는 주인공의 현실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살아있는 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첨언하자면, 의태어만으로도 제법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