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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묵 선덕사 주지]‘부처님답게’라고 입춘부적을 쓰다
2017년 02월 10일(금) 00:00
입춘(2월4일)이 지났으니 이제 정유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입춘에는 한 해의 액난을 막고자 전국에서 삼재풀이 기도나 삼재막이 기도를 올린다. 삼재는 대삼재와 소삼재로 구분되는데, 대삼재는 물의 재난, 불의 재난, 바람의 재난이고, 소삼재는 무기나 도구로 인한 재난, 전염병에 걸리는 재난, 굶주리는 재난을 말한다. 이 삼재가 9년마다 들어와서 3년간 머무는데, 삼재가 시작되는 해를 들삼재, 그 다음 해는 묵삼재 또는 눌삼재라 하고, 삼재가 끝나는 해를 날삼재라고 한다. 3년 내내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들삼재가 가장 힘들다거나 눌삼재 혹은 날삼재가 가장 위험하다는 등 의견이 다르다.

삼재의 액난을 막고자 입춘 즈음에는 사찰 뿐 아니라 삼천리 방방곡곡이 기도터가 된다. 이름을 적은 속옷과 짚 인형을 태우기도 하고 용왕제를 지내거나 거리에서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부적을 써서 집에 붙이고 몸에 지니기도 한다.

띠에 따라 일률적으로 삼재가 들어와서 3년간 지속된다거나, 속옷을 태우거나 부적을 붙이고 지니면 재난을 피한다는 이런 일들은 모두 근거 없는 미신이리라. 여덟 가지 곤란 가운데 하나인 학업난의 경우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적을 붙인들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며, 학업난이 있다 하더라도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면 부적을 붙이지 않더라도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집단적 어리석음이 치유되지 않고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부적을 보고 의미를 따져보다가 내가 단순논리로 잘못 판단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래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책에 꽂아두거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무심코 책을 읽다가 네 잎 클로버를 보면 선물을 준 사람을 떠올리며 잠시 행복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곁에 두거나 몸에 지니고 있으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는 마스코트와 부적은 의미가 다르지 않다. 네 잎 클로버를 미신이라고 하지 않듯이 부적도 의미를 살피면 미신이라고 통째로 비난하는 것은 과하다.

삼재부적을 보면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매 그림과 함께 하늘의 눈으로 사방팔방을 살펴서 재앙을 막고 보호한다는 의미가 담긴 글자와 그림이 담겨 있다. 이런 의미를 담은 종이를 주면서 ‘한 해 살아감에 어려움이 없기를, 평온하기를’하고 축복해주는 것이 무슨 미신이겠는가. 다만 이 부적이 부적 자체에 신묘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종교화되고 상업화되면 미신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속옷을 태우는 것도 그렇다. 일을 잘못해 송사에 휘말렸는데 속옷을 태우면 상대가 갑자기 소송을 취하해주겠는가? 음식을 잘못 먹어 식중독에 걸렸는데 속옷을 태우면 낫겠는가? 속옷을 태우는 의미를 다시 짚어보아야 한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종이를 한 장 주고 힘든 것을 적으라고 하고는 다 적은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라고 한다. 풍선에 힘든 일을 적고는 풍선을 터뜨리라고 한다. 종이에 힘든 일을 적어서 태워버리라고 한다. 힐링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기법들이다. 이런 힐링 기법과 속옷 태우기는 같은 방식이다. 자신을 짓누르는 그 어려운 일들에 대해 잠시 극복하는 상태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 일은 극복 가능하다는 자기 암시를 주고, 힘을 내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수백, 수천년 전부터 알게 모르게 이런 힐링 기법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속옷을 태우는 행위 자체를 신비화하고 종교화하면 이 역시 미신의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입춘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려고 처음으로 부적을 만들었다. 스마트폰 크기의 종이에 ‘부처님답게’라고 손 글씨로 적었다. 훔치면 즉시 도둑이 되고, 거짓말하면 즉시 거짓말쟁이가 되듯이, 우리가 부처님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그 즉시 부처님으로 사는 것이다. 기도하고 축원한 뒤에 나누어 주면서 이 부적을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삶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하고 평온할 것이라고 알려드렸다. 이런 부적,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