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 양림동에서 생긴 일
광주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이하 양림동)에는 ‘펭귄’(?)이 산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펭귄 할아버지가 산다. 주인공은 김동균(63)씨. 무릎이 불편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마치 펭귄과 닮아 동네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김 할아버지 덕분에 이웃들은 ‘펭귄마을’이라는 근사한 문패도 갖게 됐다.
펭귄 마을은 양림동 커뮤니티센터 뒤편에 위치해 있는 작은 텃밭이다. 말이 텃밭이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고물창고’다. 과거 화재로 폐허가 된 빈집의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동네 벽에 하나 둘씩 전시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텃밭이 쓰레기로 뒤덮이는 게 속상했던 김씨가 고물들을 보기 좋게 늘어놓은 것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빨래 방망이, 너덜너덜해진 플라스틱 모기채, 이가 빠진 사발 …. 전시된 추억의 물건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치 70∼80년대로 되돌아 간 것 처럼 반갑다.
뭐니뭐니해도 펭귄마을의 명소는 펭귄 시계점이다. 대형 벽걸이 시계에서부터 탁상시계, 원형시계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가 넘는 오래된 시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방문객들은 오래된 시계들을 보면서 잠시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는 색다른 즐거움에 빠진다. 그 덕분에 요즘 전국 각지에서 펭귄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펭귄마을이 입소문을 타게 된 건 근대기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양림동의 후광 효과 덕분이다. 100여 년 전 광주 최초로 서양 근대 문물을 양림동에 들여온 선교사들은 양림산 자락의 땅을 구입해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기독교를 전파하는 등 근대 문화를 꽃피웠다. 우일순 선교사 사택, 오웬 기념각, 양림교회, 어비슨 기념관을 비롯해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고택, 다형(시인 김현승) 카페, 한희원 미술관 등이 대표적인 명소다.
이런 배경으로 광주시는 지난 2008년부터 근대유적의 보고(寶庫) 양림동을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해 300여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광주시의 장밋빛 청사진을 무색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양림동에 자리한 광주기독병원이 직장어린이집을 신축하기 위해 병원 내 선교사 사택을 철거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주민자치회가 철거계획에 강력 반발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병원 측이 잠정중단을 발표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린 상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보여주기식 ‘양림동 프로젝트’의 허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사업의 근간인 양림동의 가치와 ‘주인의식’을 일깨우는 데 소홀한 대신 하드웨어와 일회성 이벤트에만 급급하다 보니 ‘거리낌없이’ 선교사 사택을 밀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며칠 전 서울의 미술평론가 C씨는 선교사 사택 철거논란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면서 ‘어떻게 광주에서 이런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마치 문화광주의 ‘민낯’을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려 선뜻 답장을 하지 못했다. 하긴 어디 나만 그랬을까. 양림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난 며칠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뭐니뭐니해도 펭귄마을의 명소는 펭귄 시계점이다. 대형 벽걸이 시계에서부터 탁상시계, 원형시계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가 넘는 오래된 시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방문객들은 오래된 시계들을 보면서 잠시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는 색다른 즐거움에 빠진다. 그 덕분에 요즘 전국 각지에서 펭귄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배경으로 광주시는 지난 2008년부터 근대유적의 보고(寶庫) 양림동을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해 300여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광주시의 장밋빛 청사진을 무색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양림동에 자리한 광주기독병원이 직장어린이집을 신축하기 위해 병원 내 선교사 사택을 철거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주민자치회가 철거계획에 강력 반발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병원 측이 잠정중단을 발표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린 상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보여주기식 ‘양림동 프로젝트’의 허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사업의 근간인 양림동의 가치와 ‘주인의식’을 일깨우는 데 소홀한 대신 하드웨어와 일회성 이벤트에만 급급하다 보니 ‘거리낌없이’ 선교사 사택을 밀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며칠 전 서울의 미술평론가 C씨는 선교사 사택 철거논란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면서 ‘어떻게 광주에서 이런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마치 문화광주의 ‘민낯’을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려 선뜻 답장을 하지 못했다. 하긴 어디 나만 그랬을까. 양림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난 며칠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