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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미술관과 광주폴리
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6년 05월 25일(수) 00:00
지난달 중순, 오랜만에 찾은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은 봄기운이 가득했다. 계절도 계절이지만 예전에 보지 못했던 크고 작은 카페와 한희원미술관 등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 생기가 넘쳤다. ‘내가 알던 그 양림동이 맞나?’ 할 정도로 산뜻하고 화사했다.

그중에서도 양림동 커뮤니티 센터 옆에 서 있는 근사한 ‘작품’이 시선을 끌었다. 정운학 작가의 ‘빛의 열매’라는 7m 높이의 미디어아트 조형물이었다. 나무줄기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지난해 말 양림동 커뮤니티 센터 개관을 기념해 설치됐다.

낮에는 조형물의 화려한 색감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밤에는 하나둘씩 켜지는 오색 조명이 주위를 밝혀 준다. 그 때문인지 조형물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마침 기자가 방문한 날도 양림동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기념사진을 찍는 10여 명의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빛의 열매’는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선 SNS를 통해 양림동의 포토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조형물 하나가 양림동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수년 전부터 3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은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조성 사업이 서서히 결실을 맺는 것 같아 내심 반가웠다.

문득 지난해 들른 제주도의 방주교회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서귀포 안덕면에 자리한 방주교회는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작품’을 둘러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성경의 ‘노아의 방주’에서 모티브를 얻은 그는 얕은 연못을 만들어 자갈을 깔고 물을 채운 뒤 그 위에 은빛 건축물을 세워 앞으로 나아가는 방주의 모습을 재현했다. 방주교회 앞에서 만난 일부 관광객은 2박 3일 동안 제주도의 유명 건축물들을 둘러 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근래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내세운 휴양지에서 테마가 있는 관광도시로 변신 중이다. 자연경관과 장소성을 극대화한 거장들의 건축물과 조형물이 속속 들어서면서부터다. 한때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유명했던 섭지코지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 하우스’(레스토랑)와 본태 박물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유리 재질의 피라미드 조형물 ‘아고라’ 등이 세워지면서 힐링과 명소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광주에도 빼어난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증심사 자락에 위치한 의재미술관과 전통문화관, 비엔날레 제문헌(提文軒), 양림동의 이장우가옥과 최승효고택, 도심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폴리(follie·장식용 건축물)까지 다양하다. 마치 과거와 현대,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건축의 향연’을 보는 듯하다.

의재미술관은 고(故) 의재 허백련 화백의 삶과 예술 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01년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다. 유명 건축가 조성룡 씨가 설계한 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유리로 마감한 현대식 건물이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이뤄 그해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1년 완공된 광주비엔날레 사무 동인 제문헌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승효상 씨의 ‘분신’이다. ‘문화를 제안하고 인도하는 집’이란 뜻의 이곳은 인근 용봉제와의 조화, 대형 스크린을 연상케 하는 건물의 전면 파사드가 돋보이는 건축예술의 표본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옛 전남도청에 문을 연 문화전당(연면적 16만 1237㎡)은 광주의 랜드마크로 부를 만하다. 재미 건축가 우규승 씨의 ‘빛의 숲’이라는 콘셉트(concept)로 설계된 건물은 무등산과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지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미학을 담아낸 걸작이다.

여기에 지난 2011년 광주비엔날레 특별 프로젝트로 탄생한 19개의 광주 폴리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자산이다. 물론 초창기 도심의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기도 했지만 지난 2013년 공간 개념과 주변과의 조화를 보완한 2차 프로젝트를 계기로 삭막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 쉼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건축물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도시와 국가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때문에 광주시와 관련 기관들이 지역의 역사·문화·미학을 지닌 건축물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투어 코스로 내놓는다면 국내외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볼거리로 흥(興)한 도시, 그거야말로 문화 광주가 꿈꾸는 미래 아닌가.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