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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까페] 아이들이 떠난 후
2016년 04월 13일(수) 00:00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술가 중에 앤드류 와이어스(1917∼2009)라는 미국 화가가 있다. 우리나라의 이중섭 화백이나 박수근 화백처럼 미국에선 20세기 회화사를 빛낸 국민화가로 추앙받는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품인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1948년 작)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10여 년 전 뉴욕 미술관의 전시장에 내걸린 ‘크리스티나…’ 를 마주한 순간 묵직한 돌 하나가 가슴에 얹힌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유화를 주로 쓰는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템페라 기법(안료를 계란노른자에 개어서 작업)을 즐겨 그린 그의 작품들은 유화 특유의 광택은 없지만 차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인상적이다. 마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을 연상케 한다.

‘크리스티나… ’ 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극사실의 고요한 그림이다.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불편한 고향 친구 크리스티나 올슨을 모델로 그린 이 작품은 크리스티나가 들판을 가로 질러 언덕 위의 집으로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굴레를 특유의 서정적인 질감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앤드류 와이어스를 다시 떠올린 건 지난해 5월 (사)4·16 가족협의회가 부산·광주·인천·제주 등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한 세월호 추모 기념 4·16 기억 프로젝트 ‘아이들의 방’ 때문이었다. 사회적 망각에 저항하고 사회적 연대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규명을 바라는 의미를 담은 사진전이다.

옷걸이에 걸린 교복, 손때 묻은 교과서, 매일 밤 베고 자던 베개…. 금요일에 돌아오기 위해 수학여행을 떠난 ‘주인’들의 빈 방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였다. 한 아이의 책상을 지키고 있는 달력은 2014년 4월에 멈춰져 있고 교복은 침대 위에 단정하게 놓여있다. 아마도 방 주인공이 수학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등교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미리 ‘세팅’한 것이리라.

최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아이들의 방이 다시 등장했다. 경기도 미술관이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일환으로 마련한 ‘사월의 동행전’(4월16∼6월26일)에서다.

하지만 아이들의 방의 주인은 여전히 없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앤드류 와이어스의 ‘주인의 침대’(Master Bedroom·1965년 작)가 오버랩됐다. 방 한가운데 자리한 텅 빈 침대의 머리맡에 덩치 큰 개가 누워있는 그림이다. 외출한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기다리다 지쳐 잠든 모습인 듯 하다. 하지만 그림 속 개는 행복해 보인다. 저녁이 되면 ‘컴백홈’한 주인이 방문을 열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것이므로.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로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됐다. 긴 시간 동안 과연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그저 참담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아이들이 떠난 빈방의 손때 묻은 교과서와 곰인형, 교복이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린다. 냉기만이 감도는 아이들의 방에 따뜻한 온기가 흐르게 될 날은 언제쯤일지….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