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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그늘진 곳 살피는 따뜻한 행정
채 희 종
사회2부장
2016년 03월 23일(수) 00:00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난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을 시작으로 싹을 틔웠다. 이어 중단과 부활을 반복하는 흐름을 거친 뒤, 1995년 민선 단체장 선거가 치러지면서 진정한 지방 자치제가 정립됐다. 올해로 20돌을 맞은 지방자치는 ‘지방화’ ‘지방시대’라는 단어의 탄생에서 보듯 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궤를 같이해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매체들도 지방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명칭을 지방부나 전국부, 또는 사회2부(일반 사회 분야를 다루는 사회1부와 구별한 명칭)로 부르고 있다.

광주일보는 사회2부를 두고, 전남 지역 22개 시·군과 전남에 인접한 전북 지역 5개 시·군 등 모두 27개 시·군을 전담·취재하고 있다. 사회2부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 1∼2년 새 지방자치의 급격한 변화를 느낀다.

대체로 행정은 단체장 위주로 진행되고, 특히 재선을 원하는 이들은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성 위주의 정책을 편다. 단체장을 선거로 뽑는 제도의 특성상 일정 부분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과도하거나 쓸데없는 공사를 진행해 혈세를 낭비하기 일쑤였고, 이 과정에 비리가 개입되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수백억 원,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호화 청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인구 10만 명 수준의 지자체에 초대형 체육관이 들어서는가 하면 사람도 찾지 않는 곳에 세워진 역사관·문학관도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행정 서비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체장의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은 지자체는 물론 주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반성과 성숙을 가져다 주었다.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따라 거의 예산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주는 ‘작지만 따뜻한’ 시책들이 점차 늘고 있다.

전주시는 지난 2월 최첨단 탄소 소재를 활용한 ‘발열 의자’를 시내버스 승강장에 배치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겨울철이면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노인들이 승강장의 따뜻한 의자에서 몸을 녹이며,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풍경이 연출됐다. 탄소 의자가 처음 설치된 곳은 새벽 인력시장 일용근로자 쉼터 정류장이었다. 지금은 30곳에 탄소 의자가 설치돼 있고, 점차 확대할 계획이란다. 앉을 때마다 주민들의 마음까지 데워 주는 탄소 의자지만 지금까지 들어간 총 예산은 1억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유지·관리비도 사실상 거의 들지 않는다.

남원시는 퇴직 공무원 3명을 무보수 행정 도우미로 위촉해 ‘민원 상담인제’를 운영하고 있다. 민원 접수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퇴직자들이 직접 안내해 주고, 기본 서류까지 작성해 주고 있다. 이들은 자원해서 민원 상담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중 무보수로 활동 중이다.

순천시는 움직임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일명 ‘어르신 유모차’를 제공하고 있다. 걸을 때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유지해 주고, 간단한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제작된 보행 보조차를 65세 이상 노인들이 최소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정읍시는 현금 지원 위주의 출산 장려책에서 벗어나, 영양 상태가 나쁜 저소득 가구의 임산부와 영유아에게 보충 영양식품을 제공하는 실질적인 지원책으로 바꿨다.

광주시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야광 안전조끼를 나눠 주기로 했다. 노인의 손수레에도 야광 인식이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갈수록 폐지 줍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데다,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도 길거리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있어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탄소 발열 의자, 어르신 유모차, 노인 야광조끼…. 사실상 예산도 몇 푼 들지 않는 어찌 보면 사소한 시책들이다. 하지만 수백억 원짜리 청사나 수억 원을 들인 축제보다 우리의 마음을 훨씬 따뜻하게 해 준다. 소소해 보이지만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그늘진 곳까지 살피는 감동 행정이 바로 지방자치의 미래 아니겠는가.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