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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국가와 사드(THAAD)문제
최 영 태
전남대 교수·역사학
2015년 03월 25일(수) 00:00
우리 역사는 2천년 이상 동안 인접 강대국인 중국과 교류하고, 침공 받고, 그러면서 독립을 유지해 왔다. 바다 건너 남쪽에 위치한 일본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대국이 또 다른 이웃으로 등장했다. 이런 지리적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외교적 능력이다.

우리 역사에서 잘한 외교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를 언급할 때 흔히 17세기 초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든다. 광해군은 국세가 기울어진 명나라와 새로이 대륙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는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통해 전쟁 위기를 모면했다. 부모의 나라로 불렀던 명나라와 오랑캐라고 경멸했던 후금(청) 사이에서 그런 중립 외교를 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대(事大)와 명분이 아닌, 국가이익과 실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다. 광해군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다.

요즈음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THAAD) 문제로 한국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전통적인 우방이자 군사·정치적으로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은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고 싶어 한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다는 논리지만 진짜 의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 문제는 과거라면 전혀 고민할 주제가 아니다. 그냥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미국이 견제의 대상으로 삼는 중국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또 다른 특별 우방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지난 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얻은 무역흑자는 550여억 달러였다. 지난 해 우리나라가 거둔 전체 무역흑자가 470여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중 무역의 중요성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병자호란 때 척화론자 윤집은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면서 “차라리 나라가 없어질지라도 (명나라와의)의리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보수 세력 대부분은 열렬한 친미주의자들이다. 그들의 미국 떠받들기는 조선시대 대신들의 명나라 떠받들기에 못지않다. 이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보수세력에 의존하는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경제 우방 중국이 우리에게 사드 배치를 거부하라고 한다. 중국의 이런 요구를 전면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무엇보다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는 박근혜 정권의 처지를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미국의 경쟁자는 독일과 일본에서 소련과 중공(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주저하지 않고 어제의 적국인 서독 및 일본과 손을 잡았고, 그 덕분에 서독과 일본은 단시일 내에 경제 강국으로 재 부상했다. 국가 간의 이런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의 우방 미국이 언제까지 우리의 우방으로 남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존재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팽창일로에 있는 인접 강대국 중국을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국경을 접한 중국은 우리가 가까이 지내야 할 존재이지만 동시에 크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결국 국가의 이익을 무시한 무조건적인 반미도, 친미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도한 친중이나 반중도 물론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정권적 차원에서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근혜 정부의 속성이 어떻든 간에 이 문제는 한 정권의 안위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해답은 친미도, 반미도, 친중도, 반중도 아닌 순전히 주권국가 국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400여 년 전 광해군도 그렇게 했는데 지금의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사드 문제의 해법을 찾을 때는 한반도의 평화,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최우선적으로 삼아야 한다. 결국 사드 배치를 거부하는 것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