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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千鶴)의 노래를 들어라
송 기 동
사회2부장
2015년 01월 07일(수) 00:00
“흑두루미가 깜짝 놀라 갑자기 날갯짓을 하면 볍씨 7000개를 먹은 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순천만 생태해설사인 강나루(56) 씨는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 떼가 외부인의 발길을 싫어한다면서 탐조대로 출발하기 전 특별히 당부했다. “자! 1분만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지난 4일 새벽 6시 순천만자연생태관. 서울과 인천·부산 등지에서 새벽 어둠을 뚫고 9개 팀 23명의 탐조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대부분 유치원이나 초등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탐조객들이었다. 이들은 순천시가 처음으로 12월부터 3월까지 매주 일요일(오전 6∼9시)에 운영하는 ‘겨울 철새 새벽 탐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인솔하에 최대한 새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랜턴도 켜지 않고 발소리를 죽여가며 20여 분간 농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탐조대로 이동했다. 탐조대는 청둥오리 식당을 이전한 자리에 세워졌는데 2층 실내에서 필드스코프나 쌍안경을 이용해 철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탐조객들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차광막을 올린 후 필드스코프를 갯벌 쪽으로 향했다. 30여 분이 지나 시나브로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자, 대략 1∼1.5㎞ 이상 떨어져 있는 갯벌에 가늘고 긴 다리의 흑두루미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듯 이따금 날갯짓을 하던 흑두루미들은 오전 7시 30분께 날개를 활짝 펴고 먹이를 먹기 위해 들판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고배율 필드스코프를 이용해 흑두루미의 우아한 군무와 비행을 지켜보던 탐조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순천만을 찾아 겨울을 나는 두루미류가 지난 연말 1000마리를 넘어서면서 순천시는 ‘천학(千鶴)의 도시’가 됐다. 12월 25일 모니터링 결과 흑두루미 966마리, 재두루미 35마리, 검은목두루미 4마리 등 3종류 1005마리의 두루미류가 관찰된 것이다. 이 가운데 흑두루미는 전 세계적으로 1만2000여 마리에 불과해 멸종 위기종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28호로 지정돼 있는 희귀조인데, 순천시의 시조(市鳥)이기도 하다.

순천만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류는 지난 1996년 11월 70여 마리가 첫 관찰된 이후 2003년 138마리, 2007년 229마리, 2011년 525마리, 2013년 871마리 등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이다.

서식 환경과 번식에 까다로운 흑두루미가 매년 순천만을 월동지로 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낙동강 을숙도 등 국내 다른 지역 흑두루미 서식지 환경이 하구언 건설 등 대형 토목공사 등으로 인해 훼손된 반면 순천만 서식 환경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이로 인해 과거 낙동강 지류를 따라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出水市)로 날아가던 흑두루미의 이동 경로가 최근 서해안으로 바뀌면서 서산 천수만을 거쳐 순천만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순천시도 환경 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순천만 갯벌과 맞닿은 인안뜰(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의 전봇대 292개를 뽑아내는 한편 벼농사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 전량 수매하는 등 많은 공력을 들인 것이다. 겨울철에는 수매한 쌀 중 일부를 다시 흑두루미의 먹이로 농로에 뿌려주기도 한다. 특히 겨울을 나는 철새들의 안정적인 서식 환경 조성을 위해 인안뜰에는 탐방객과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처럼 순천만 보전은 순천시와 환경단체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꼽히는 순천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연안습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낙동강 을숙도 사례에서 보듯이 개발 논리에 밀리면 철새 서식지의 환경은 한 순간에 변할 수 있다. 순천만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먼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생태도시’ 순천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탐조 프로그램을 마친 자리에서 누군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새벽이라 힘들었지만 흑두루미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먹이를 뿌려 주며 인간과 환경·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진짜 에코(Eco) 가족 여행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