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 유 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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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 유 레디?
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3년 12월 11일(수) 00:00
지난 11월3일은 광주와 대구에겐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9월6일∼11월3일)와 대구 시립미술관(이하 대구미술관)의 일본작가 쿠사마 야요이전(7월16일∼11월3일)이 대장정을 마치고 성황리에 폐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도시의 명암은 크게 엇갈렸다. ‘거식기, 머시기’를 주제로 디자인산업화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비엔날레는 목표치(30만 명)에 못 미치는 22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인 반면 쿠사마 야요이전은 33만 명을 동원하는 ‘대박’을 낸 것이다. 물론 전시기간과 콘셉트가 다른 데다, 관람객 숫자만으로 대구의 손을 들어주는 게 조금 ‘거시기’ 하지만 쿠사마 야요이전의 흥행은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쿠사마 야요이전은 관람객 33만 명 가운데 25만4527명이 유료입장객이었다. 입장료 5000원의 수입만으로 10억2700만 원을 거뒀다. 전시예산 5억 원을 들여 2배 이상의 수익을 냈으니 꽤 ‘재미’를 본 셈이다. 반면 20억 원을 들인 디자인 비엔날레는 관람객 22만 명 가운데 유료관람객이 17만 명에 그쳤다. 그나마 40%에 가까운 입장객이 학생 단체관람이었다.

하지만 쿠사마 야요이전의 가장 큰 성과는 이런 기록들이 아니다. 대구미술관은 기획전 하나로 개관 2년 만에 전국에 ‘미술도시 대구’의 존재감을 심어줬다. 내놓을 만한 소장품도 거의 없고, 접근성도 떨어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동안의 설움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여기에는 지난해 50대 초반의 기획자를 관장으로 영입하고, 단일전시에 5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 대구시의 ‘통 큰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비록 부산영화제,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메가 브랜드와 필적하기 어렵지만 ‘웰메이드 전시’를 통해 근현대 미술 중심지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13일 개막한 대구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의 불황에도 전국에서 3만 여명이 다녀가는, 이른바 ‘쿠사마 야요이 효과’를 누렸다.

대구의 잇단 쾌거는 ‘소리만 요란한’ 광주시의 문화행정을 되돌아 보게 한다. 대형 문화이벤트들을 추진하면서 행·재정적 뒷받침을 소홀히 하는 ‘전시행정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올해 7월 부산, 경주, 전주 등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국내 대표도시로 선정된 2014년 동아시아 문화도시사업과 내년 유네스코 미디어 창의도시 지정을 겨냥한 ‘2013 광주 국제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 좋은 예다.

지난 10월 설치된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무국은 시의 예산 지원이 늦어지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내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요코하마(일본), 취안저우(중국)시의 경우 각각 40억 원과 8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올인’하고 있는데 반해 광주는 행사비로 고작 4억 원을 책정해놓았다.

더욱이 최근 요코하마가 일본 전역에 동아시아 문화도시의 가치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과 달리 광주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윗선’의 눈치만 보고 있다.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역시 용두사미로 끝난 케이스. 유네스코 미디어 창의도시 지정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했으나 고작 1억80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해 행사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오는 2014년은 광주의 문화지형을 업그레이드하는 대형프로젝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착공 9년 만에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전당)이 내년 말 완공되는 데다, 한해 예산 6200억 원에 달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4월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하게 된다. 전당과 예술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역문화계와의 파트너십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기에다 광주비엔날레가 창설 20주년을 맞이하고, 동아시아 문화도시가 2월부터 본격 가동된다. 말 그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문화융성의 해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광주시의 ‘주변’을 들여다 보면 기대 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싱크탱크인 광주발전연구원은 미래지향적인 문화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대다수 문화예술기관의 수장은 혁신과는 다소 먼 60∼70대 원로들이다. 또한 2015년 U대회 준비에 올인하는 시의 방침에 따라 이들 대형프로젝트의 예산 지원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아시아의 문화허브를 꿈꾸는 광주에게 2014년은 기회이자 위기다. 광주시는 문화융성의 해에 걸맞는 정책과 인물, 행정의 ‘환상적인 3박자’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간 ‘무늬만 문화수도’인 2류로 전락하게 된다. 장밋빛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j 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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