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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배려한 설 문화, 모두의 행복
2010년 02월 23일(화) 00:00
아버지는 슬하에 오남매를 두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자식을 가르치셨고, 딸 아들 차별 두지 않고 모두 대학을 보내셨다. 교육만큼은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기회를 주었지만 아버지는 1920년대에 태어나신 분이라 가부장제(家父長制)의 관념이 강하였다. 여성의 역할로 가족 돌봄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였고, 명절 친정에 온 나에게 항상 자녀, 남편, 시부모님 안부를 당부하였다. 조금 시간이 지체되면 “어서 가라”며 등 떠밀어 보내고는 하였다. 난 “딸자식은 자식 아니냐”라며 서운한 마음에 툴툴거리기도 하였다.

아버지께서 여든을 넘기시더니 작년 봄 치매가 왔다. 치매는 당신을 억눌렀던 관습과 습관을 하나씩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 간병을 하고 “집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네 집이 여긴데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아! 아버지…. 난 아버지의 노여움 속에 오랜 세월동안 딸을 곁에 두고 싶었으나 매번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딸을 향한 연민의 정을 가부장제라는 관습으로 철저히 누르고 마음에도 없는 표현을 하셨던 것이다.

설날 어느 드라마에서 결혼한 딸을 시댁으로 보내고 아버지 혼자 차례를 지내며 눈물짓고, “시댁은 차례 준비할 시숙과 동서들이 있지만 딸만 둘인 친정은 큰딸인 내가 차례를 지내겠다. 매년 그렇게 해왔는데 결혼을 했다고 왜 달라져야 하는가”라고 딸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시댁어른들은 결혼을 하였으니 당연하게 설날 함께 있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은 며느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음식준비로 지친 동서는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 생각에 속이 상한다.

드라마에만 있는 이야기일까? 설날 TV인터뷰 중에 “북적이는 시댁과는 다르게 쓸쓸하게 계실 부모님생각에 마음은 친정에 가 있다”는 여성의 말은 설 문화의 현주소를 나타내고 있다.

해를 번갈아 시댁과 친정을 나누어 갈 수 있고, 드라마처럼 상황에 따라 딸만 있는 집에서는 친정에서 차례를 지내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있으면 된다.

시대가 달라져서 사람들은 설문화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지배하였던 가부장제의 관습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 이리 더딘 이유는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이기적인 모습이나 대책 없는 여성상으로 그려지는 언론매체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설 문화나 가족관계에서 여성을 배려하고 평등을 실천하는 것이 여성들의 권익만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가깝게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부터 멀게는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어깨를 펴지 못한 많은 남성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다.

/채숙희 광주여성의 전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