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난관의 극복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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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절정의 어려운 고비가 찾아온다. 고비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고비가 다 같을 수는 없다. 즉 근기에 따라 다 각각이며 반복하여 여러 차례 올 수도 있고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어렵게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수월하게 넘기는 사람도 있다. 또 사안에 따라서 쉽게 넘길 수 있는 것과 아주 어렵게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익혀 온 바가 각각이요 근기 또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고비에 자칫 자포자기하거나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고민하거나 또는 할까 말까 망설이며 허송세월하는 등의 형태로 방황할 수 있다. 바로 그 어려운 난공(難空)·난지(難知)·난행(難行)의 문제이다. 이때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난공능공(難空能空)·난지능지(難知能知)·난행능행(難行能行)의 대결단이 있어야 한다.
난공능공(難空能空)이란 비우기 어려운 것을 비우고 철저히 털어 버려서 더 털고 더 비울 것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찮은 것은 잘 잊고 잘 털어서 비울 수 있으나 아주 어려운 것은 참으로 놓고 털고 비우지 못한다. 어려운 이유는 구체적으로 본능적인 것일 수도 있고, 업장일 수도 있고, 습관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시비이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윤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그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두는 번뇌이다. 어떤 것이 되었든지 자기 근기로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것을 과감히 털고 지우고 버리고 비우는 사이에 우리 영혼은 깨끗해지고 해탈의 실력이 길러지고 자재의 정력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비우기 어려운 것을 결단코 비우는 공부를 끝없이 해내야 한다.
난지능지(難知能知)란 알기 어려운 것을 능히 알아내고 기어이 알아내고 철저히 알아내어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옛 말씀에 “일개 필부로도 능히 알고 능히 잘하는 것이 있으나 그 지극한 데 이르러서는 성인도 알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절정의 경우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오리무중의 안개 속에서 해매는 것 같은 경우가 있다.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이치나 시비이해(是非利害)로 전개되는 일상의 문제에서도 어느 것 하나 화두거리 아닌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복잡하고 현묘한 세계는 더 난해(難解)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과제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어이 알아가려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세상만사 의두 아닌 것이 없다. 기어코 알아내려는 의두를 걸고 다닐 때 드디어 알아지고 깨닫는 계기를 만난다. 비록 사소한 의심이라도 의두로 걸지 않고 지나치면 알 수 있는 어떠한 계기도 만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막막한 것이라도 기어이 알아내려고 화두로 삼을 때 드디어는 난지능지의 경지에 들 수 있다.
난행능행(難行能行)이란 실행하기 어려운 것을 기어코 실행해 내는 것이다. 비록 사소한 일상적 생활일지라도 바람직한 이념을 실현하고 법도 있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사는 자세로는 어림도 없다. 하물며 수행을 통해 중생의 탈을 벗고 성불하여 불보살의 위치에 오르고 성위에 오르려는 발원을 하고 나서는 앞길에 어찌 어려운 일이 없겠는가. 반드시 어렵고 잘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많은 갈등을 겪는다. 마음대로 잘되지는 않고, 앞길은 잘 보이지 않고, 자칫 포기하고 싶을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꿈틀거리고, 그 와중에 마군이는 기승을 부리고, 그리하여 사면초가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고비에서 간직해야 할 경어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하면 나는 백번을 하리라. 다른 사람이 열 번에 하면 나는 천 번을 하리라.” 이런 정신으로 임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은 이루어지고야 만다. 이때야말로 큰 분발과 용단이 절실하다. 이럴 때에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박차고 일어나 용기 있게 과감히 정진적공에 뛰어들어 밀고 나가는 결행을 하는 것, 이것이 난행능행이다. 행하기 어려운 것을 과감히 결행하면 승리의 월계관은 내 것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강급으로 치닫는다.
그러므로 삼대력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는 이 고비들을 난공능공(難空能空)·난지능지(難知能知)·난행능행(難行能行)으로 과감히 돌파해 가면 드디어 여의주를 얻고 승전고를 울리며 격앙가를 부르면서 연화대에 올라 한없는 보람을 만끽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과제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어이 알아가려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세상만사 의두 아닌 것이 없다. 기어코 알아내려는 의두를 걸고 다닐 때 드디어 알아지고 깨닫는 계기를 만난다. 비록 사소한 의심이라도 의두로 걸지 않고 지나치면 알 수 있는 어떠한 계기도 만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막막한 것이라도 기어이 알아내려고 화두로 삼을 때 드디어는 난지능지의 경지에 들 수 있다.
난행능행(難行能行)이란 실행하기 어려운 것을 기어코 실행해 내는 것이다. 비록 사소한 일상적 생활일지라도 바람직한 이념을 실현하고 법도 있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사는 자세로는 어림도 없다. 하물며 수행을 통해 중생의 탈을 벗고 성불하여 불보살의 위치에 오르고 성위에 오르려는 발원을 하고 나서는 앞길에 어찌 어려운 일이 없겠는가. 반드시 어렵고 잘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많은 갈등을 겪는다. 마음대로 잘되지는 않고, 앞길은 잘 보이지 않고, 자칫 포기하고 싶을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꿈틀거리고, 그 와중에 마군이는 기승을 부리고, 그리하여 사면초가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고비에서 간직해야 할 경어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하면 나는 백번을 하리라. 다른 사람이 열 번에 하면 나는 천 번을 하리라.” 이런 정신으로 임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은 이루어지고야 만다. 이때야말로 큰 분발과 용단이 절실하다. 이럴 때에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박차고 일어나 용기 있게 과감히 정진적공에 뛰어들어 밀고 나가는 결행을 하는 것, 이것이 난행능행이다. 행하기 어려운 것을 과감히 결행하면 승리의 월계관은 내 것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강급으로 치닫는다.
그러므로 삼대력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는 이 고비들을 난공능공(難空能空)·난지능지(難知能知)·난행능행(難行能行)으로 과감히 돌파해 가면 드디어 여의주를 얻고 승전고를 울리며 격앙가를 부르면서 연화대에 올라 한없는 보람을 만끽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