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록 선사하던 미나리꽝 사라졌어도
[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무논 대량생산 최적지…재배방식 변경 습지 개발로 줄어
무논 대량생산 최적지…재배방식 변경 습지 개발로 줄어
![]() /클립아트코리아 |
40대 이상이라면 미나리꽝(미라니깡)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황량한 겨울 들녘에 초록을 선사하던 논이나, 담가둔 물이 얼어 얼음을 지치는 동네 놀이터(아이스링크)로 변신했던 장소로 말이다.
미나리꽝은 미나리를 심은 논이다. 땅이 걸고 물이 괴거나 흐르는 곳에 만든다. 큰 하천이 흐르고 하천을 따라 미나리를 재배하는 미나리꽝이 펼쳐져 있다. 미나리 덕분에 동네는 겨울에도 초록빛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곧바로 종자를 놓아 가꿨으니 보리와 자리는 시기가 겹치지만, 조금 욕심을 부리면 벼 보리 혹은 미나리 순으로 경작할 수 있어 논의 활용 면에서 최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미나리는 축축한 땅이나 물속에서 자라는 산형과 미나리 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대만, 일본, 자바, 인도 및 아시아 대륙에 전체에 걸쳐 널리 분포하며 세계적으로 40여 종이 있다. 키는 30~60cm 정도 자라고 잎은 어긋나며 깃꼴겹잎이고 개개 잎은 알 모양에 톱니가 있다. 여름철 복산형 꽃차례에 희고 작은 꽃이 핀다. 잎과 줄기에 독특한 향이 나며 찌개에 넣거나 삶거나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8~9월 무렵에 10cm 정도로 밑동을 자른 미나리 줄기를 무논에 뿌려 11월쯤 1차 베어낸 뒤 12월에 비닐을 씌워 다시 키워서 50cm 정도 자라는 1월부터 수확에 들어가고 3~5월 제철을 맞는다.
미나리와 관련 오래된 기록으로는 ‘시경’ 반수(泮水) 편에 ‘사락반수 박채기근(思樂泮水 薄采其芹·즐거운 반수 물가에서 미나리를 가벼이 캔다)’이란 구절이 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의 춘추시대에 이미 작물화되어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반수는 태학을 감싸 도는 물로서 반수에서 미나리를 캔다는 것은 태학에서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성균관을 감싸 도는 개천도 반수로 불렸으며 반궁(泮宮)은 성균관의 별칭으로 쓰였다. 이어 미나리를 캔다는 의미의 채근(采芹)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그 근원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또 신라 후대의 최치원이 지은 ‘계원필경’에 변변치 않지만, 정성 담긴 선물의 의미로 미나리가 등장하고 ‘고려사’ 열전 가운데 임연의 전기인 ‘반역임연조’에 ‘근전(芹田)’이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미나리가 아시아 전역에서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길러졌음을 알 수 있다.
미나리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고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 건강을 위해 꾸준히 섭취하면 좋은 채소다. 나물로 무쳐 먹거나 김치로 담가 먹기도 하지만 주로 비린내를 없애거나 향을 내야 하는 요리에 쓰인다. 한국형 허브 식물로 이용됐다. 워낙 오래전부터 미나리를 먹어 왔기에 미나리에서 나는 강한 향을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동남아 요리 속 고수, 이탈리안 파슬리와 같은 역할인 셈이다.
미나리는 논과 습지에서 자란다. 또 밭에서도 자랄 수 있다. 미나리를 물미나리와 밭미나리로 나눠서 부르는 것도 재배 장소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미나리를 논에서 재배하려면 수심이 50㎝ 이상으로 유지돼야 하고 수확할 때도 물에 들어가야 하기에 작업이 까다로워 요즘은 밭에서 재배하거나 비닐하우스를 이용하고 있다. 논에서 자라고 밭에서 쉽게 수확하는 방식을 찾았는데 겨울철 대량생산하는 미나리 대부분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상전벽해라고 할까, 요즘은 미나리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미나리꽝이 개발하기에 편한 땅인지라 빌딩을 짓고, 도로를 내면서 점차 사라지더니 이젠 도심 외곽으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몸에 좋은 미나리를 먹지 않을 것도 아니고, 휴지기 논을 활용해 대량으로 겨울철 미나리를 생산하던 미나리꽝의 의미는 달라질 일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미나리가 자라기 좋고 식물의 보고라고 할 습지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bigkim@kwangju.co.kr
미나리꽝은 미나리를 심은 논이다. 땅이 걸고 물이 괴거나 흐르는 곳에 만든다. 큰 하천이 흐르고 하천을 따라 미나리를 재배하는 미나리꽝이 펼쳐져 있다. 미나리 덕분에 동네는 겨울에도 초록빛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곧바로 종자를 놓아 가꿨으니 보리와 자리는 시기가 겹치지만, 조금 욕심을 부리면 벼 보리 혹은 미나리 순으로 경작할 수 있어 논의 활용 면에서 최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또 신라 후대의 최치원이 지은 ‘계원필경’에 변변치 않지만, 정성 담긴 선물의 의미로 미나리가 등장하고 ‘고려사’ 열전 가운데 임연의 전기인 ‘반역임연조’에 ‘근전(芹田)’이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미나리가 아시아 전역에서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길러졌음을 알 수 있다.
미나리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고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 건강을 위해 꾸준히 섭취하면 좋은 채소다. 나물로 무쳐 먹거나 김치로 담가 먹기도 하지만 주로 비린내를 없애거나 향을 내야 하는 요리에 쓰인다. 한국형 허브 식물로 이용됐다. 워낙 오래전부터 미나리를 먹어 왔기에 미나리에서 나는 강한 향을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동남아 요리 속 고수, 이탈리안 파슬리와 같은 역할인 셈이다.
미나리는 논과 습지에서 자란다. 또 밭에서도 자랄 수 있다. 미나리를 물미나리와 밭미나리로 나눠서 부르는 것도 재배 장소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미나리를 논에서 재배하려면 수심이 50㎝ 이상으로 유지돼야 하고 수확할 때도 물에 들어가야 하기에 작업이 까다로워 요즘은 밭에서 재배하거나 비닐하우스를 이용하고 있다. 논에서 자라고 밭에서 쉽게 수확하는 방식을 찾았는데 겨울철 대량생산하는 미나리 대부분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상전벽해라고 할까, 요즘은 미나리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미나리꽝이 개발하기에 편한 땅인지라 빌딩을 짓고, 도로를 내면서 점차 사라지더니 이젠 도심 외곽으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몸에 좋은 미나리를 먹지 않을 것도 아니고, 휴지기 논을 활용해 대량으로 겨울철 미나리를 생산하던 미나리꽝의 의미는 달라질 일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미나리가 자라기 좋고 식물의 보고라고 할 습지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bigkim@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