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건축주가 함께 쌓아올린 삶·공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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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건축주가 함께 쌓아올린 삶·공간 드라마
우주를 짓다-윤주연 지음
2025년 10월 17일(금) 00:20
윤주연 건축사가 설계한 경기도 양평 단독주택 ‘우주’. <헤이북스 제공>














여섯 개의 독립서점으로 이뤄진 고창서점 마을이 얼마 전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힘든 여정이 예상되는 일이기에, 인터뷰 당시 “적정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험해보고 싶다”는 책방지기들의 말을 들으며 ‘적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이름에는 정체성이 담겨 있다. ‘적정건축’이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 이 건축사무소가 짓는 집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흔히 ‘건축가가 지은 집’하면 연상되는 것들과는 다른 요소들이 집에 담기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의 소통법도 다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윤주연 호남대 건축학부 교수가 쓴 ‘우주를 짓다’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짜여진 ‘집의 탄생기’다. 건축주와 건축자가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해 숱한 결정을 내리고 시공한 후 마침내 입주에 이르기까지 두 주체가 함께 완성해간 이야기는 흥미롭다.

“집 좀 지어줘.”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와 중국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던 저자는 친구의 제안에 처음으로 단독주택을 설계한다. 4인 가족을 위한 땅콩집을 짓는 과정에서 그는 “집이 단순히 도면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담기고, 시간이 쌓이고, 관계가 회복되고, 건강이 돌아오는 작고 조용한 기적의 그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바로 건축사무소를 연다.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뺄 것도 더할 것도 더 이상 없는 상태가 건축의 적정함”이라는 비전을 담고서다.

책의 주인공은 저자가 40대 부부와 함께 완성시킨 단독주택 ‘우(宇) 주(宙)’다. 이야기는 건축 상담을 ‘오늘 당장’ 하고 싶다는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건축주는 아내의 암 완치 5주년을 기념해 ‘우리집’을 지어 살고 싶은 부부로 ‘건축가가 만들었지만 건축가가 만든 것 같지 않은 집’을 원했던 그들에게는 집에 대한 ‘열 한 가지 구체적인 소망들’이 있었다. 저자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건축주가 가진 특별함을 알아채려 노력했고, 그들의 소망을 깊이 들여다보며 설계를 했다.

‘아침에 명상&요가(일출이 보이면 금상첨화)’라는 소망을 들은 저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창을 내고, 건축주가 땅을 선택한 이유였던 아름다운 서향의 시원한 풍광을 즐기며 뜨거운 볕은 피할 수 있도록 처마를 선택한다. 또 남향의 장점을 살리며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천창의 아이디어를 내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2층 테라스를 제안한다.

책에 관해서는 집 주인의 삶에 맞춘 처방이 옳다는 생각에 요리를 즐기는 남편을 위해 주방에 책장을 마련하고 야외와 시선이 연결된 반신욕탕, 자주 오는 친구들이 재밌게 보내면서 주인의 사생활은 방해하지 않는 공간 등도 함께 만들어나간다. 저자는 비용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욕실 타일 줄눈 50밀리미터가 안 맞아서 벽을 뜯어서 옮기는 결단을 내리며 골칫거리였던 마당의 돌을 파내지 않고 오히려 조경의 요소로 활용해 집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공간에 대한 마음의 처방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 주치의”가 건축가라고 믿는 저자는 “집을 짓는 일은 단순한 시공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철학을 공간 안에 녹여 내는 일”이기에 “숨겨진 마음마저 공간으로 번역해서 설계에 담는 노력은 건축가의 의무”라고 말한다.

책에는 새 집 짓기 전 지금 집에서 확인할 부분 등 건축주를 위한 건축가의 조언 등도 담겨 있다.

흥미로운 ‘우주 탄생기’를 읽고 나면 우주의 공간에 꼭 한번 발을 들이고 싶어진다. 저자는 이 책이 ‘예비 건축주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말하는데, 편지를 받아든 이들은 아마 자신의 소망이 담긴 집을 상상하며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헤이북스·2만2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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