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쉼을 허락하라”- 조서현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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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쉼을 허락하라”- 조서현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1학년
2024년 12월 11일(수) 00:00
지난해 발표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번아웃을 경험한 젊은 층이 33.9%에 이른다고 한다. 불과 4년 전, 비슷한 조사에서 번아웃 경험률이 9.9%였던 점을 고려하면, 청년들의 삶은 점점 더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통계는 단순히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학업, 취업 준비, 인간관계, 그리고 경제적 부담에 이르기까지, 우리 청년들은 마치 끝없는 트레드밀 위를 걷는 것처럼,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다. 그나마 필요한 건 ‘쉼’이지만, ‘쉬면 뒤처진다’는 강박이 우리를 계속 채찍질한다. 그러나 쉼이란 게으름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이제는 사회도 인정해야 할 때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예상치 못한 가정사와 학업 중단으로 청소년 쉼터에서 2년간 생활했다. 처음엔 멈춰버린 내 삶에 초조함과 무력감만 가득했다. 친구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쉼터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쉼터의 상담 프로그램과 멘토링을 통해 내가 처한 상황을 천천히 정리하며, 처음으로 ‘쉼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은 내가 다시 세상으로 나설 용기를 얻는 데 있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 이후 LH 청년전세임대를 통해 자취를 시작하며 ‘나만의 공간’에서 진정한 쉼을 경험했다. 매달 자립지원수당을 받으며 경제적 부담을 덜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쉼이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재도약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우리 청년 세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청소년기에 세월호 사건을 겪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빛나는 20대를 보냈다. 거기에 더해 치솟는 집값,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건은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사고방식을 더욱 심화시켰다.

번아웃은 이제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번아웃을 직업 관련 증후군으로 분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쉼 없이 달리기만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청년들이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는 이제 청년들에게 쉼을 허락해야 한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과 삶의 여유를 제공하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청년들이 스스로를 돌보며 자신의 리듬에 맞춰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곧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가 있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청년들이 각자의 속도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기업들은 무리한 성과 압박보다 직원의 건강한 워라밸을 고민해야 하고, 국가는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국민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

쉼이 허락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이제는 청년들에게 진정한 쉼을 허락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쉼을 통해 청년들이 더 단단한 내일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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