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주면 아이 낳을까요 - 박상하 나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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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주면 아이 낳을까요 - 박상하 나주대 교수
2024년 06월 18일(화) 22:00
저출생 문제는 국가적으로 해결해야할 시급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시장 혼란과 잠재 성장률의 하락 그리고 지역소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쏟아 부은 예산이 수 백조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합계출산율이 2002년 1.32명이던 것이 2020년에 0.84명으로 떨어졌고 2023년에는 0.72명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며 문제는 출산율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OECD 38개 회원국의 평균 출산율은 1.58명(2021년 기준)이다. 프랑스 1.8명, 미국 1.66명 등 경제규모가 우리보다 큰 나라도 0.72명의 2배가 넘는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저출산대책은 2006년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5년 주기로 네 차례나 시행되었으나 매번 정책이 바뀌었다. 더구나 노동개혁과 기술창업 활성화 그리고 주거지원 확대와 같은 과업들은 엇박자의 연속이었다. 왜냐하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영역과 연결되어 있는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출산율을 0.6명대로 예상하고 있어 목표치를 기준으로 봤을 때 명백한 정책 실패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더 심각하다. 임시방편적인 백화점식 정책들을 동원하여 경쟁적으로 출산장려금을 뿌렸다. 얼마 전 경북과 경기도에서는 출산장려금의 효과를 분석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스스로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저출생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마저도 백가쟁명이다. 원인과 대책에서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와중에 부영이 쏘아올린 1억 원 출산장려금은 촉매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최근엔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을 제안했다가 망신을 산 적이 있었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정관·난관 복원 수술비용 지원을 포함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시의원은 저출생 대책으로 괄약근 케겔과 체조운동을 내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황당한 정책들이다. 다급해진 윤석열정부는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국가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는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다. 부처 장관도 사회부총리로 교육·노동·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하고, 단순한 복지정책 차원을 넘어 국가 아젠다가 되도록 하겠다고 한다. 부디 좋은 정책들이 나오길 희망한다.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역시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다.

정책론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을 옹호하며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이런 신념이 현실화되려면 ‘합리적 기대 가설’처럼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정책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런 전제하에 출산정책을 만들었다면 지금의 결과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수치상으로 나타난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를 신설하여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전제조건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다시 예산만 낭비하는 악순환도 막아야 한다. 반면에 시장론자들은 저출생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오히려 저출생과 인구감소로 취업기회는 확대되고 관계지향적인 여유로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저출생 문제는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은 감소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실제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릴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한 나라들 모두 제로클럽이 되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을 포함하여 홍콩 0.77, 대만 0.87, 싱가포르 0.97로 나타났다. 단연코 돈을 줘서 아이 낳게 하는 정책은 일시적인 반짝 효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구조와 노동시간을 줄여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고 일자리가 충분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는 낳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리해보면 기존 저출산정책은 이미 실패했으며 문화를 바꾼다는 것도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정부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해답은 정부가 ‘합리적 기대 가설’의 전제조건을 충실하게 따르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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