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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집에서 100일 밥먹기’ - 김미은 편집국 부국장·여론매체부장
2024년 05월 22일(수) 00:00
“개나리꽃도 모르던 내가 어느날/ 서울 왔다가 기차타고 집으로 가는덴/ 노란 꽃이 창문으로 보인은대 그 꽃이/ 개나리라고 같이 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때 알았다/ 꽃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잡지 ‘샘터’를 읽다 눈앞이 흐려졌다. 삐뚤빼뚤 손글씨로 써내려간 시는 푸른어머니학교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어머니의 작품. 그녀가 이름을 몰랐던 꽃이 작약이라든가, 히아신스라든가 조금은 어려운 이름의 꽃이었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아이들도 동요로 부르는, 그래서 누구나 다 아는 개나리의 이름도 모른 채 바쁘게 살아왔을 그녀의 한평생이 틀린 맞춤법 사이로 그려졌다. 이제 개나리를 보면 ‘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시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개나리 꽃이름과 가수 임영웅

얼마 전 모임에서 전해들은 사연도 마음에 남는다. ‘미스터 트롯’을 통해 임영웅을 알게 된 80대 후반 노모의 소원은 꼭 한번 콘서트에 가보는 것이다. 가족들은 모두 티켓팅에 참전해 그 어렵다는 콘서트 티켓을 확보해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렸다.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보고 가족들은 또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어머니 생신날 각자가 임영웅의 노래를 준비해 독창, 합창으로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하얀 아들이 늙은 부모 앞에서 색동옷 입고 춤췄다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언젠가 임영웅 콘서트가 막 끝난 공연장 앞을 지나다 만난 풍경도 오버랩됐다. 임영웅 팬을 상징하는 하늘색 셔츠를 입고 형광 머리띠를 한 채 쏟아져 나오던 수 천명의 사람들 사이에 특히 나이 많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상기된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그들을 보고 사는 데 바빠 앞만 보고 달리느라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들 이제라도 많이들 하시라 속으로 응원했다.

최근 출간된 법정스님의 ‘진짜 나를 찾아라’에 등장하는 1996년도 강연 ‘수많은 생을 두고 쌓은 인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송광사에서 조카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아, 이제 내 생명의 뿌리가 꺾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들은 생명의 뿌리이고, 어머니는 생명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어서인지 왠지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다가왔다. ‘무슨 날’이나 되어서야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있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전철로 출퇴근하는 터라 이동 중에 많은 노인들을 만난다. 모두 누군가의 아들, 딸이었고 지금은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어떤 부류는 노인들에게 청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얼마 전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들렀다 ‘대한민국-교황청 수교 60주년 기념전’을 관람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흥미로운 전시였는데 특히 버튼을 누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적힌 종이가 나오는 코너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지 않습니다’, ‘불의와 폭력으로 인한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습니다’ 등 새길만한 글귀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노인들은 우리 사회의 보물입니다(The elderly are a treasure for our society)’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았다. 개나리 꽃이름도 모른 채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이 시대 모든 부모님들에게 전하는 찬사 같았기 때문이다.



교황 ‘노인들은 우리 사회 보물’

최근 식사 자리에서 듣고 감동했던 이야기 하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유명 음식점에 나이 든 엄마를 모시고 간 딸은 맛있다며 좋아하는 엄마에게 “우리 내년에도 꼭 와요”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가 나지막이 답했다. “응 그러자. 그런데 내년에도 올 수 있을까.” 섣불리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퍼뜩 정신이 든 딸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엄마와 함께 할 이벤트를 구상했다. 이름하여 ‘엄마와 집에서 100일 밥 먹기’.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남편과 서울에서 다니러온 아들이 할머니를 위해 차린 특별한 밥상 등 지금까지 스물 두 번의 식탁이 차려졌다. 시시콜콜 숱한 이야기가 오고 간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부모님과 할께 할 ‘무언가’를 궁리해 보는 것, 우리 모두가 항상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