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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2주, 그리고 앞으로의 3년 -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2024년 04월 23일(화) 00:00
총선이 끝난 지 열흘만에 대통령 지지도가 훨씬 더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치적 패배의 충격으로 대통령은 깊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앞으로의 3년이 더 걱정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선거 직후 총리와 대통령비서실 전면개편을 공언하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그다음은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의 국정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언급은 그를 비판해온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총리와 비서실장 인선을 둘러싼 혼란은 여당 지지자들에게조차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자 그에 대한 지지철회가 가속화되었다.

선거 직후 대통령은 탄핵 저지선을 확보했기 때문에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대통령은 결국 그토록 회피해왔던 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증폭시켜온 극단적 대립의 정치지형과 문화가 낳은 결과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후보가 처음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가 훌륭한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아주 적은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신망을 받는 인사들이 그의 정치적 멘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점차 이들과 거리를 두고 고심의 길 대신 편하고 달콤한 권력의 길을 선택했다.

그에게 가장 큰 도전은 여소야대의 국회와 최고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야당 지도자의 존재였다. 국민적 소통과 함께 적당한 거리에서 이들과 소통하고 제도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대통령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간단하게 외면했다. 검찰의 오랜 습성 때문인지 몰라도, 협치라는 단어는 아예 모르는 듯했고 지혜를 구하는 소통은 낯설기만 했다. 결국 ‘날리면’ 논란을 계기로 패기가 만용이 되었고 ‘홍범도’ 논란을 계기로 승리의 술잔은 독배가 되었다.

이번 총선을 통하여 국민들은 그동안의 국정방향과 운영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여소야대를 통해 균형을 잡을 것을 명령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겸허하게 지혜를 모으고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사즉생’의 결연한 각오가 필요한데 과연 그에게 그런 결단이 가능할 것인가.

현재 한국정치가 놓인 상황은 1990년 3당 합당이나 1997년 DJP연합의 기억을 상기시키는데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명확한 양당 구조여서 선택의 폭이 좁다. 여당과 야당의 눈높이가 너무 다르고 여야 모두 화해와 상생의 정치보다는 대립과 혐오의 정치에 익숙해있다. 협치는 규범적인 담론이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협치의 유력한 방안은 총리 국회추천제인데 현재의 정치 지형상 이의 실현은 미지수이다.

거대 야당은 단호한 정권교체론과 온건한 협치론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3년 남은 거 확실합니까?”라는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다. 협치에 대한 여당의 입장도 미묘하다. 여전히 여당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수직적 당정관계에 대한 반감과 함께 협치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공천권을 매개로 대통령이 여당을 일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나갔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최종 선택은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3대 과제는 주지하다시피 세계 최저의 출생율과 양극화 문제의 해소, 대통령 권한 및 책임의 분산과 자치 확대, 근본적인 평화정책의 수립이다. 윤대통령이 한국 현대사에서 작은 모퉁이에라도 기록되는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이 세 가지 과제 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진심으로 전력했다는 것을 앞으로의 3년 내에 증명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진보정부는 진보의 벽을, 보수정부는 보수의 벽을 부셔야 한다는 역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이념적 공세와 절연하고 진솔한 소통으로 기득권을 가진 집단의 이해 때문에 이루지 못한 개혁의 일부를 담당해준다면, 최소한이라도 마지막 평가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