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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을 생각한다 - 함영대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부교수
2024년 02월 06일(화) 00:00
조선 후기 실학의 중요한 명제였던 이용후생론은 그 유래가 깊다. 중국 고대의 성왕인 우(禹)가 신하의 신분으로 순 임금에게 정치의 요체를 말하면서 한 말이다. 옳은 정치는 오직 덕으로만 할 수 있고, 정치의 요점은 백성을 보호하는 데 있는데 이를 위해 물과 불, 나무, 광물, 흙, 곡식을 잘 운용하여 덕을 바로 잡고(正德), 쓰임을 이롭게 하며(利用), 삶을 풍요롭게 하라(厚生)고 진언했다.

송나라 시대 학자 채침은 생활의 언어로 이를 다시 설명했다. 이를 테면 “정덕은 어버이의 사랑, 자식의 효도, 형제의 우애, 남편의 의로움과 아내의 순종이, 백성의 덕을 바로잡는 것이요, 이용은 공인은 여러 기기를 만들고, 상인은 재화를 소통하는 따위이니, 백성들의 쓰임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며, 후생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게 하는 따위이니,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물·불·나무·광물·흙·곡식을 육부(六府)라 하고, 정덕·이용·후생을 삼사(三事)라고 한다. 위정자들이 인민의 삶을 보양(保養)하기 위해 재물을 만들 수 있는 여섯 가지 물질적 요소를 활용하여 덕을 바로잡고, 쓰임을 효과적으로 운용하여 그 삶을 윤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논법이지만 정치의 요체는 잘 설명한 셈이다.

구체적인 물질을 지칭하는 육부(六府)와 달리 그 운용을 논의하는 삼사(三事)에 대해서는 그 세 가지 일을 조화롭게 시행하는 균형감각이 요청된다. 일반적인 조선 학자들은 정덕이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이고 이용후생은 그 다스림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주류였던 시기에 이용후생 이후에 정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연암 박지원의 생각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다. 그는 조선을 벗어나 책문에 이르러 도시의 규모가 매우 일정한 격식이 있는 것을 보고 찬탄하면서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이용(利用)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쓰임을 정예하게 한 후에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고 삶을 풍요롭게 한 후에 덕(德)을 바르게 세울 수 있다. 쓰임을 정예하게 하지 못한 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삶이 풍요롭지 못한데 어떻게 덕(德)을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생활이 안정된 다음에 시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현실적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 것이다. 정덕이 근본이 아니라 이용(利用)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현실적인 동력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용·후생을 정덕보다 우선시하는 논리가 되었다.

한편 북학파의 기수, 박제가는 정덕을 실현하자면 응당 이용후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체로 이용·후생이 하나라도 닦여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위로 정덕을 그르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공자는 ‘넉넉한 뒤에 가르칠 수 있다’라고 말하였고, 관중은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라고 말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정덕을 핵심 가치로 표방한 것이지만 이용후생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상정함으로써 이용후생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근래 한국 경학의 연구자 최석기 선생은 “조선 후기에는 정덕에 너무 치우쳐 이용후생이 경시되었기 때문에 실학자들이 이용후생을 외친 것이라면 우리 시대는 너무도 이용후생에 치우쳐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감히 ‘우리 시대의 실학은 정덕이다’라고 외친다”고 주장했다. 사실 우리 삶에 부족한 것은 이미 이용후생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우리 시대의 정덕은 과연 무엇인가? 위당 정인보는 학술에 대해 “혹 그 근본을 조심스럽게 지키면, 덕을 바르게 하고 사용을 편리하게 하고, 민생을 살기 좋게 할 수 있다. 혹 이와 반대로 하면 백 가지 법도가 곧음을 잃게 되며 이것이 오래가고 깊어져 마음이 중독되면 습관이 천성처럼 되어버려 어찌할 수 없게 된다”고 염려했다. 위당이 당대에 걱정했던 것은 주체적 민족의식이 정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용후생이 아니라 정덕이 우리 시대의 실학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시대에 걸맞는 정덕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