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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언관(言官)의 책무 -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2023년 08월 22일(화) 00:00
요즘 방송계가 난리다. 공중파 방송의 두 축으로 ‘영향력 1위’인 KBS와 ‘신뢰도 1위’인 MBC가 연일 정부로부터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다가 급기야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의해 지난 14일 남영진 KBS 이사장이 해임됐고, 21일에는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이 해임됐다. 식민지 탄압에서 해방된 광복절을 전후해 일어난 일이다. 해임의 사유는 ‘관리 감독 소홀’이다. 남 이사장은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했다고 하고, 권 이사장은 ‘공짜 주식 취득’ 의혹이 있는 안형준 MBC 사장을 선임한 죄를 물었다. 정말 그런 사실이 해임시킬 정도의 중죄가 된다면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사안인데, 세 명 중 두 명이 여당 측인 방통위에서 일방적으로 서둘러 해임을 의결해 버렸다.

왜 그렇게 거대 공중파 방송사들을 정권이 서둘러 장악하고자 했을까. 권 이사장은 “어떠한 위법행위를 하더라도 이동관 방통위원장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MBC를 장악해 보겠다는 몸부림이다”고 했다. 새로 임명될 ‘언론 장악 기술자’ 이동관에게 ‘꽃길’을 깔아주려는 정권의 눈물 겨운 노력이 결국 양대 공중파 이사장의 해임으로 이어졌다는 건 누가 봐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이미 작년 9월 MBC의 대통령 비속어(너무 많이 쟁점화 돼서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다) 보도를 “동맹을 훼손하고” “국익을 해쳤다”며 맹공을 퍼부을 때부터 ‘언론 탄압’은 예고돼 있었다. 11월 동남아 순방 때에는 전용기에도 태우지 않더니 올해 6월부터 본격적인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지난 8일에는 감사원에서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로 송부하기도 했다. KBS에게는 수입의 근간이 되는 시청료 분리징수로 압박해 왔다. 지난 7월 방통위에서 시청료 분리징수를 의결하더니 8월 11일에는 국무회의에서도 시청료 분리징수를 위해 방송법 개정을 의결했다.

이제 KBS는 남 이사장과 윤석년 이사를 해임하고 그 자리를 여당의 인물로 채우면 11명 이사진의 여야 추천 비율은 6대 5가 되고, MBC는 권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를 해임하여 9명 이사를 여당 인물로 보완하면 방문진 이사의 여야 추천 비율은 5대 4가 된다. 이렇게 되면 KBS와 MBC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법적’으로 완전히 장악하는 셈이다. 더욱이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임명만 이루어지면(인사청문회와 관계없이 그리 되겠지만)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여당에서는 이제 드디어 언론이 ‘정상화’ 됐다고 하고, 야당에서는 ‘언론 탄압’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객관적인 지표를 보자. 6월 16일~19일 기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현직기자 80%가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임명을 반대한다고 전한다. 이명박 정부의 홍보수석을 맡으면서 언론 탄압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여당 대선주자였던 유승민 전 의원조차 MBC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권이, 권력이 방송을 본격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첫 출발로 보인다”고 말할 정도다.(그럼에도 이동관 후보자는 언론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강변한다)

국내는 그렇다고 치자. “MBC를 향한 공세와 차별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낸 바 있는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매년 언론의 날인 5월 3일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 지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3년에 네 계단이나 떨어진 47위를 기록했다. 가장 높을 때는 노무현 정부인 2006년 31위 였으며, 문재인 정부 마지막인 2022년은 43위 였다. 여당과 보수 측의 주장대로 언론 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히려 그 지수가 올라가야 할 것이다. 내년 5월에 발표되는 ‘언론자유 지수’가 궁금하다.

KBS와 MBC의 정지 작업이 이렇게 진행되면 이제 방송들은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일 것이다. 거대 공중파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 삼아 내년 총선은 물론 대선을 통한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 내고자 할 것은 자명하다. 지금도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파(향) 보도’니 ‘가짜 뉴스’라며 “국익을 해친다”고 윽박지르는데 이제 어느 언론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겠는가. 대다수 언론들은 알아서 처신할 것이고, 정권에 아부하려는 ‘기레기’들만 가득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언론과 유사한 언관(言官)이란 관리가 있었다. 당시 사간원(司諫院)이나 사헌부(司憲府) 관리로 임금의 잘못을 간하고 관리들의 비행을 규탄했던 벼슬이다. 언관은 사대부라면 응당 해볼 만한 벼슬로 왕이나 권신으로부터 무리한 외압이나 탄압은 없었다. 그래야만 국가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왕정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언론 자유’가 있었던 셈이다.

다산(茶山)도 큰 아들 학연(學淵)에게 벼슬살이에 대해 지켜야 할 가계(家誡)를 일러주면서 “미관말직에 있을 때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들여 맡은 일을 다 해야 한다”며 “언관(言官)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議論)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의 다산이 현재 정권이 가지고 있는 언론관보다 훨씬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 놀랍다. 요즘 KBS나 MBC의 사태를 보노라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언론 자유’가 다산이 살았던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