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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사람들-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
2023년 08월 08일(화) 00:15
한자가 만들어지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갑골문에서 ‘백성 민’(民)은 눈목(目)에 창과(戈)가 박힌 살벌한 모양의 글자였다. 가시로 한쪽 눈을 멀게 만든 노예, 즉 저항하거나 도망치기는 어렵지만 시키는 일은 할 수 있는 노동 인력을 뜻하는 글자였던 것이다. 이 글자는 역사의 진보에 따라 차츰 평민 백성으로 신분이 상승되었다가, 근대에는 드디어 국가 권력의 원천으로 대접받는 국민(國民)이며 천부 인권을 주장하는 시민(市民)이 되기에 이르렀다.

민(民)을 피통치자인 평민 백성으로 보던 조선시대에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일 뿐이다”라고 하여, 민(民)을 근대적 시민처럼 역사의 주요 변수이며 주체로 인식했던 사상가가 있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許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지배 계급의 한없는 탐욕을 비판하며 백성 무서운 줄 알라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그 글에서 허균은 백성을 셋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지배자가 보여주는 것만 보는 수동적 태도를 갖고 있어서 쉽게 부릴 수 있는 백성은 항민(恒民)이다. 지배 계급이 이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살가죽을 벗기고 뼈를 부서뜨릴 정도의 가혹한 착취를 견디다 못해 지배자를 원망하게 된 백성은 원민(怨民)이다. 이들도 꼭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항상 세상을 뒤엎을 야망을 갖고 항민들 사이에 숨어 사는 백성이 호민(豪民)인데 이들이 바로 지배 계급에게 두려운 존재라고 했다.

원민이 많아졌다 싶을 때 호민은 원민들을 선동하여 봉기한다. 혁명의 시작이다. 권력에 굴종하던 항민들은 봉기가 한창 힘을 얻는다 싶으면 기성 지배 계급을 버리고 봉기에 합류한다. 혁명의 절정이다. 호민은 언제나 혁명의 기회를 노리다가 틈만 보이면 실행하는 자들이므로 매우 두렵다고 했지만, 허균의 설명을 들어 봐도 예방할 방법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배 계급이 아무리 두려워한다 해도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허균은 꼭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지만, 오히려 지배 계급이 두려워하고 노력을 쏟아야 하는 대상은 원민 즉 봉기에 직접 에너지를 제공할 정도로 국가 권력에 화난 사람들일 것이다.

화난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이 본디부터 다른 종족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축제 거리에서 인파에 휩쓸려 죽고 다치고 후유증에 시달리는데,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닌 자들이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사죄조차 외면하고 애도조차 방해하면, 보통 사람도 화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화물 운수 화주들이 업무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한 채 운송 노동자를 독립 사업자라 억지부리고 국가도 화주들 편에 서서 그들이 노동자는 아니라며 각종 사회 보장에는 배제해 오다가, 운송 사업자로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운송 거부를 주장하자 이번에는 불법 파업을 하는 노동자라 우기며 운송 개시 명령을 내리면, 보통의 운송 노동자도 화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의 숙원이던 간호법 제정을 후보 시절 약속했다가, 당선된 뒤에는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 합당한 설명도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보면 보통의 간호사도 화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하청에 재하청을 거치며 복마전이 되어버린 건설 현장에서 그래도 최소한의 생존을 지키고 무너지지 않을 건물을 지으려 노력하던 건설 노동자들을, 노동자 보호와 산업 구조 개선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제 할 일은 방기한 채 노동자들만 ‘건폭’이라 매도하던 어느 날 갑자기, 자존심조차 붕괴된 동료 노동자가 분신 자살을 하면 보통의 건설 노동자도 화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인권과 노동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끊임없이 요구하는데도, 예산과 행정을 틀어쥔 자들은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학생의 보육과 안전까지 떠넘기며 그 모든 것에 교사 각자의 삶만 갈아 넣도록 강요하던 어느 날, 절망한 동료 교사가 자살을 하면 보통의 교사라도 화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들을 가르고 골라 약자들만 찾아내서 그들의 눈동자에 가시를 찔러도, 정부의 선전에 동조하며 보여 주는 것만 보는 국민들이 지지해 주기만 하면 괜찮은 것일까? 사방팔방에서 화난 사람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분노의 열기는 폭주를 향해 차오르고 있다. 괜찮을까? 원민이 많아지면 항민도 결국 원민의 편에 서게 된다고, 허균은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