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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 맞선 김남주 시인 등 42명 ‘정신적 손배’ 인정
지하신문 ‘함성’지 만들어 배포
167∼284일간 구금·고문 피해
광주지법, 31억원 배상 판결
2023년 06월 08일(목) 20:00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저항해 체포·구금된 전국 최초의 유신(維新) 반대사건인 일명 ‘함성(喊聲)지 사건’의 주인공 고(故) 김남주(1946~1994)시인과 동료·가족들이 국가로부터 입은 정신적 피해를 인정받았다.

광주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나경)는 당시 전남대생이었던 김 시인을 비롯해 동료였던 이강·김정길·김용래·이평의·윤덕연씨, 이들의 가족 등 총 42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은 총 31억원의 배상금을 인정받았다.

1972년 당시 전남대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김 시인은 해남중 동창이자 전남대 법학과 학생이던 이강씨와 함께 유신체제를 고발하는 일명 지하신문인 ‘함성’지 500여부를 광주 일대에 배포했다.

함성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씨와 그 주구들은 권력에 굶주린 나머지 종신집권 야망에 국민의 귀와 눈에 총부리를 겨누었으며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국민의 고혈을 강취하고 있다 …자학과 어두움 속에 이탈을 일삼고 있는 청년 학생 시민이여. 우리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독재자의 복마전을 향해 4·19정신으로 총매진하라’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함성에 이어 전국 대학에 뿌릴 ‘고발’지가 이씨의 주도로 만들어 졌다.

고발에는 ‘4·19 넋으로 무장한 우리의 고발은 여러분의 고막을 울릴 것이요, 탐욕에 어두운 독재자의 눈에는 가시가 되리라…가난한 민중의 고혈을 빨아 모은 특권층, 단 한번의 민중봉기면 불타는 대연각보다 더 쉽게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는 글이 실렸다.

이씨는 고발지를 서울에 피신해 있던 김 시인에게 보냈으나 당시 중앙정보부 검열에 발각됐다.

경찰은 제작에 관여했던 1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해 구속했다.

1973년 3월부터 4월 사이 수사기관에 붙잡힌 이들은 각각 167∼284일 동안 구금돼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결국 고 김남주·이강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김정길·김용래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이평의·윤덕연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이들은 1973년 7월 모두 전남대에서 제적 처리됐고 재입학해 졸업하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일부 피해자는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 임용됐으나 보안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은 2014년 재심을 청구해 2021년 5월 불법체포·감금과 불법증거 수집 등이 인정돼 무죄를 선고받자 지난해 3월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국민을 불법으로 구금하고 증거를 조작한 재판을 받게 해 불법성이 매우 크다”며 “피해자들과 가족은 간첩 또는 간첩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입었고 50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 배상이 지연된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