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에서 무등산 쪽으로 걷도록 유도한다면- 박해용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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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에서 무등산 쪽으로 걷도록 유도한다면- 박해용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소장
2023년 06월 02일(금) 00:00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도시 중 하나라고 하는 베를린에 가면 사비니플라츠(Savignyplatz)라는 지역이 있다. 통일 전부터 이 지역은 서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지적인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다. 동시에 중심과 바로 연결되고 있어 시내에 나온 사람들이 한두 시간 보내기에 딱 좋은 곳에 있다. 도심 한 가운데이면서 조용하기가 그지없다. 그곳에 또 문화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산책을 하려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경치가 좋은 곳을 즐겨 찾는다. 그러나 나이가 황혼에 들어선 사람들의 산책은 도시 한 가운데여도 상관치 않을 듯하다. 필자는 무등산의 손이라고 알려진 산수동 어느 동네에 사는 관계로 도심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멀리 무등산 정상이라도 보이면 괜히 무조건 기분이 좋다. 하루 피곤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아하, 아직 살아 있구나.

그러다가 위로 순환도로가 지나는 지산교 아래를 지나면서 기분은 180도 바뀐다. 조선대 정문 앞이거나 혹은 인문학당 쪽으로 난 아기자기한 산책길이 끊어지고 소음과 황량한 풍경이 있는 곳을 지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뇌가 작동하지 않고 나 자신도 모르게 발이 빨라진다. 어서 지나가고 싶은 곳이다. 이런 지역 공간들이 있기에 어쩐지 광주라는 도시가 낯설어지고 도시 장면들이 깨져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광주를 방문한, 신경이 조금 예민한 사람들은 광주는 친절한 도시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곤 하는 것 같다.

지산교 아래에 좀 더 머물러보자. 무등을 보며 도시를 걷는 한 산책자는 지산교 아래 풍경이 좀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보이는 도시 한 모습에 대해서 상상의 날개를 무한히 펼 수 있다. 순환도로 아래 지산교 위로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가 있다. 그 도로는 조선대와 법원 사이를 지나 보리밥집 거리로 이어진다. 그렇게 번잡한 길은 아니다. 지산교 도로 밑, 밤실로 4번지에 큰 공간이 있다. 지금은 이 공간이 재활용 수집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작은 가게 다섯 정도가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우선 순환도로에서 내려오는 소리를 차단하는 방음벽을 수집물 공간의 실내와 실외에 설치하고, 튼튼한 다섯 개의 기둥을 세운 다음, 도로와 분리된 벽을 뜯어내고 통유리로 채광을 부른다. 마침내, 공간을 서로 이어지는 다섯 공간으로 나눠서 다섯 개의 ‘전문 책방’을 운영하게 하는 장소로 바꾼다. 멋지지 않는가!

지산교 아래 공간을 - 기고자가 몇 년 전 문화 충격을 받았던 베를린 사비니플라츠처럼 - 산 아래 정원을 배경으로 하고, 인근에 다양한 문화단체들이 거주하는 도심 속 생활 공간으로 만든다. 이렇게 밤실로 4번길 카페 리베르떼 맞은 편 공간이 살아나면 도심에서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생명력을 갖게 된다. 무등산의 정기를 도심 가까이서 관광객들에게도 나눠 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도시가 살아난다.

사비니플라츠에 가면, 주위에 분수가 있는 꽃 정원이 있고, 시민들이 여유롭게 한두 시간을 보내는 도심 속 휴식처에 선다. 정원 주변엔 식당가, 시민단체의 사무실 등이 있다. 정원 벤치에 앉으면 지상 위로 도시 철도가 정차하는 지하철역을 볼 수 있다. 바로 철도 아래에 그 유명한 ‘전문 서점’이 있고, 책을 고르다 보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방문자도 있다. 베를린 사비니플라츠 근처엔 산이 없지만, 지산교 배경엔 무등산이 있다. 순환 도로에서 내려오는 차 소리를 차단하는 소음 벽은 반드시 무등 형상을 안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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