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소(殯所)를 차리다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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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소(殯所)를 차리다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3년 06월 01일(목) 23:00
빈소의 주인공은 단연 고인이다. 빈소는 오직 고인을 위해서 꾸며진다. 그러나 고인을 위한 무대에 정작 주인공인 고인은 오직 사진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주인공의 사진은 무대에서 가장 정성을 들여 꾸민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조문객들은 조문하기 위해 그곳을 잠시 들르기만 할 뿐, 식당식으로 세팅된 휴게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잠깐의 조문을 하고 나면 달리 할 일이 없는 조문객들은 유가족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넨 뒤 서둘러 휴게 공간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조문만 하고 가 버리는 건 매우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에 고인을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는 곧 내가 장례식장에 보내는 시간과 비례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일종의 암묵적인 규칙처럼 어느 정도 체면치레할 정도의 시간을 휴게 공간에서 보낸다.

사실 고인을 향한 애도와 추모는 빈소를 꾸미는 것으로, 적당한 금액의 조의금을 준비하고 또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조문하는 것으로 이미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빈소에 마련된 휴게 공간에서의 시간은 고인에 대한 약간의 추억과 대부분의 신변잡기들로 채워진다. 추모와 애도는 형식이 담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형식 속에 담긴 내용은 형식과 별반 관련이 없다.

고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주인공인데, 정작 주인공인 자신이 소외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빈소에 있는 동안이라도 고인을 기억하고, 고인을 위해 슬퍼하고,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문객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인의 바람일 뿐, 현실은 한 인간의 사망에 따른 여러 가지 복잡하고 현실적인 대소사와 오랜만에 만나는 조문객들의 이런저런 잡담들로 채워진다. 만약 나의 빈소라면 어떤 느낌일까? 나의 빈소이고 내가 주인공인데 정작 내가 빠진 무대를 채우는 사람들은 관례에 따라 정형화된 행동들을 연출한다. 나를 위한 진정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란 ‘나’가 산 자들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빈소 분위기처럼 내가 사라져도 다른 이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마치 누군가가 죽어도 조문객인 나의 일상은 변함없이 유지되듯 말이다. 멀리 있는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카페인에 의지해 한 시간 동안 운전하고, 그렇게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오고, 비바람 몰아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혼자 퍽퍽한 비빔밥을 먹던 그런 일상들 말이다. 거기 어디에도 고인은 없다.

먼저 간 자식을 잊지 못해 일상이 엉망이 된 이도 있다. 방황하는 10대 자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어미들의 눈물을 모은다면 바다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려서 몸도 마음도 황폐화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가 다시 무너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 모든 고통스런 삶 속에 ’나’가 있다. 이들에게 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괴롭히는 감정과 고통을 깨끗하게 도려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은 오롯하게 그 사람의 것이다. 타인의 몇 마디 말이 그 사람의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타인의 말은 단지 조건이 되었을 뿐, 실제로 그리한 것은 그 사람 자신이다. 산다는 것은 나로 인한 온갖 집착의 연속이다. 집착이 안겨주는 온갖 감정과 고통들 역시 오로지 나의 몫이다.

인생이란 1인극 팬터마임 같은 것이다. 관객은 그저 배우의 침묵 속 몸짓을 통해 배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읽어낼 뿐이다.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다면 잠시 공감할 것이나 그뿐. 관객은 1인극 팬터마임 연극이 끝나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1인극 팬터마임 인생을 연기한다. 그 1인극 속에서 혼자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불안해 하고 분노하고 좌절한다. 관객인 타인은 배우인 나의 몸짓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할 뿐이다. 나의 1인극 인생이 끝나면 타인들 역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타인의 기억 속에서 나는 금새 잊혀진다. 나를 아는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것이 나의 죽음이다.

머릿속으로 나의 빈소를 차려 본다. 그리고 빈소의 분위기를 상상해 본다. 나의 죽음이 조문객들의 일상을 위해 소비되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다. 나를 향한 집착은 참으로 허망하고 부질없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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