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날이 오고 있다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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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그날이 오고 있다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3년 05월 15일(월) 00:00
5월이다. 5월도 벌써 중순이다. 신록의 계절이요, 계절의 여왕이 5월이다. 봄꽃은 대부분 지고 온 천지는 푸른 신록으로 가득 차, 싱싱하고 헌사롭다. 이렇게 자연은 아름답고 순진하고 자연스럽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평화롭고 안온한 숲의 대지 위에 또 5·18이 오고 있으니 이런 부조화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며칠 뒤면 43주년 참혹한 비극의 날, 학살의 날, 피의 날인 5·18이다. 자연은 소생하여 싱그럽게 솟아오름을 보여 주는데, 인간은 권력을 잡기 위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는 야만성을 보여 주었다. 소생과 말살, 이런 부조화에 더욱 화가 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5월 18일, 그날은 화창한 초하의 일요일이었다. 점심 무렵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버스로 금남로를 지나다 대학생들과 전투경찰, 특전사 계엄군들과 투석전을 벌이는 광경을 보고 바로 결혼식은 가지 않고 전쟁 같은 투석전을 살펴보며 시위 군중의 뒤를 따랐다.

그 뒤 21일날은 부처님 오신 날, 불교 계율의 가장 엄한 첫 번째는 살생을 금하는 것이다. 살생을 금지한 가장 성스러운 그날, 금남로에는 무자비한 총탄의 세례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음을 당해야 했다. 이런 부조화가 어디 또 있단 말인가. 죽음의 시체를 넘고 넘으며, 어둠의 거리를 뚫고 뚫으며 민중항쟁의 거대한 불길은 끝내 중무장한 계엄군과 특전사 살인마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전남도청을 장악하는 민중 승리의 봉화가 켜지고 말았다. 시민 공동체, 대동세상이 열리면서 시민군들은 광주시의 치안을 확보하고 시민 생활의 일상을 회복하여 주민 자치의 직접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학살 만행에 전염된 계엄군들은 도청 청사에 무자비한 폭격을 감행하여 시민군을 모두 죽이거나 생포하고 끝내 도청을 악마의 손안으로 다시 가져가고 말았다.

5·18은 아비규환의 비극이요, 학살 만행의 본보기였다. 우리는 5·18을 어떻게 일으켰고 어떻게 싸웠으며 어떻게 항쟁을 계속할 수 있었는가. 우리 시대의 탁월한 민중시인 김남주의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라는 시 몇 구절을 읽어 보자.

“1980년 오월 그날입니다 오늘은 / 학살에 치를 떨며 광주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 선생과 학생들이 책가방을 내던지고 횃불을 들고 / 새벽을 향해 밤으로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 신부와 목사가 성경책 대신 십자가 대신 / 주먹을 치켜들고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 화이트칼라 사무원들이 서류철을 내동댕이치고 / 팔소매 걷어붙여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 직공들은 철공소에서 망치를 들고 일어서고 / 농부들은 들녘에서 낫과 호미를 들고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 운전사들은 거리에서 차를 세워 일어서고 / 아가씨들은 술집에서 주먹밥을 뭉쳐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 어머니들은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일어서고 / 할머니들은 우리 새끼들 다 죽인다아 군인들이! / 목청에 피를 토하면서 꼬꾸라지면서 일어선 바로 그날입니다….”

이런 기막힌 날이 5·18 그날이었다. 남녀노소, 지식인, 무지렁이 구별 없고, 직업에 차별 없이 광주의 시민이라면 모두 분노하고 억울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무서운 계엄군들과 싸움을 벌인 위대한 민중항쟁이 바로 5·18 그날이었다.

이런 장엄하고 위대한 민중 직접 투쟁, 이런 성스러운 싸움에 북한 군인들 몇 백 명이 내려와 일으킨 내란 폭동이라니, 세상에 이런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이 어디에 또 있다는 말인가. 집권당의 최고위원에서 목사라는 자까지, 지금도 북한군 남파가 사실이라고 우겨대고 있으니, 우리 광주 시민들이 참을 수가 있는가. 집권의 방편에 도움이 되고 성스러운 민중항쟁에 재를 뿌리려는 속셈에서, 광주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저 인간이 아닌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5·18 정신은 보편적 헌법정신이라고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 그와 함께 일하는 간부들이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있는 오늘의 우리들이 어쩌란 말인가. 4월이 잔인한 달이라던 시인의 말과 달리 5월은 우리에게 너무나 잔인한 달이었다. 학살의 총책임자는 한마디 사과나 뉘우침 없이 눈을 감고 말았다. 다행히 손자가 할아버지 대신하여 사과하고 뉘우친다니, 아직도 자신의 죄를 감추고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당시의 학살 주모자들, 이제라도 이실직고하고 사과하고 뉘우치기 바란다. 그래야 구천을 떠도는 5·18 영령들이 안식을 누리게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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