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쇠고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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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쇠고기 시대
2023년 05월 04일(목) 00:00
한국인의 쇠고기 사랑은 알다시피 대단하다. 돼지나 닭 같은 다른 고기는 선물용으로 쓰지 않았다. 오직 쇠고기만 가능했다. 고기뿐 아니라 족, 사골, 꼬리 등 다른 육류 같으면 저가 부산물 취급받을 부위도 아주 비싸다. 최근엔 보양 문화의 쇠퇴와 자국에서 천대받는 외국산 수입이 늘면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지만 오랫동안 명절 백화점 선물 코너의 최강자가 소뼈였다. 필자가 유럽에 있을 때 소뼈는 ‘고기만 사면 그냥 얻을 수 있는’ 존재였다. 소머리 같은 건 아예 먹는 이가 드물어서 정육점에서 팔지도 않았다.

옛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면, 유독 소고기와 소뼈 가짜 기사가 많다. 수입 고기나 젖소 고기를 한우로 속여 판 일당을 체포했다는 게 큰 뉴스였다.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아이템이었다. 물 먹인 소, 수입 소, 병든 소가 다 큰 뉴스였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병든 소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반발은 그게 소이기 때문에 더 크게 촉발되었다. 돼지였다면 그런 국민적 저항이 들불처럼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의 한우에 대한 엄청난 신뢰도 특별하다. 신성불가침에 가깝다. 한우=한민족의 등식이 있다. 사실 한국의 많은 음식물에는 토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를테면 마늘도 상당량은 유럽·중국종이고, 돼지는 재래종이 있기는 한데 대중들이 볼 수 없으며, 닭도 수입 혈통이다. 토종닭이라고 팔리는 것은 실은 육종하는 박사들이 토종 계통을 조사하여 ‘복원’하다시피 엄청 고생해서 탄생시킨 것이다.

한우는 아주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자란 종이다. 이견의 여지없는 토종의 상징이다. 토종은 훌륭하다는 자부심이 있고, 대개 그런 생각의 저변에는 ‘국뽕’이 섞여 있는데 한우는 그런 과장 없이 뛰어난 소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비싼!) 고기인 일본의 와규는 조선소, 즉 한우의 혈통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웬만하면 숨기고 싶을 일본인들도 인정한다. 관련 서적과 논문도 적지 않다. ‘일본을 살린 조선소’(日本を生きた朝鮮牛の近代史)라는 책이 2021년 여름에 나와서 필자가 입수해 보기도 했다.

최근 유명한 한문학자이면서 저술가인 강명관 선생의 신간을 읽고 있다. 제목도 흥미롭다. ‘노비와 쇠고기’다. 조선 역사에서 성균관과 그 배후 지역으로 존재했던 반촌의 노비, 그리고 쇠고기에 대한 저술이다. 반촌은 성균관이 있는 현재의 혜화동 일대의 지명으로, 여기에 소 잡는 노비 계급의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소 잡는 걸 매우 경계했다는 사실이다. ‘경운기’에 해당하는 소를 보존하는 건 농경 국가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경계를 넘어 처벌하고 심지어는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조선의 법률에 그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족과 권세가들, 무뢰배들이 밀도살을 일삼았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인기가 높아 도살을 해서 내다 팔면 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병들거나 늙어 죽은 소 정도나 법률로 허용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많은 건강한 소가 도살되었다. 그만큼 쇠고기에 대한 유혹, 열망이 강렬했다. 자칫하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에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소를 잡아서 가죽과 뿔 등이 있어야 신을 짓고 갑옷과 활 같은 무기를 만들 수 있었으니, 소를 아예 잡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다만 소가 적다는 게 당시 조선의 문제였을 뿐.

우리는 이제 언제든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특별한 날, 그것도 돈 있는 집이나 사먹을 수 있었던 불고기는 단돈 팔구천 원으로 ‘뚝배기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사먹을 수 있다. 큰 마트에 가면 제일 인기 있는 품목 중 하나가 소 양념 불고기다. 모 외국계 대형 할인점은 저 양념 불고기를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아서 고객을 유인한다는 말도 있다. 원하면 언제든 우리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한우는 그동안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고급화를 이루어 냈다. 마블링이 대세인 국제적 추세에 맞춰 사육법을 개량하고 고기 질을 올렸다. 지나치게 기름기가 많아서 한두 점 먹으면 물린다는 일본 와규와 달리 한우는 육향과 고소한 마블링 맛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우는 허들이 높다. 비싼 고기다.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소 사육 농가가 타격을 받는다. 그런 뉴스가 나가도 한우는 너무 비싸다는 사람들의 비판적 시선도 여전하다.

쇠고기, 한우와 살아온 한민족의 오랜 역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과거보다 쇠고기를 훨씬 많이 먹고 있지만 상당량이 한우가 아니다. 이 시대의 쇠고기는 아주 복잡한 이야기가 되었다. 수입 사료 의존, 마블링 논란, 가격 문제에 엄청난 양의 수입육으로 버텨야 하는 시장 구조 같은 게 우리의 쇠고기 사랑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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