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김향남 수필가] 개에 대하여
  전체메뉴
[수필의 향기-김향남 수필가] 개에 대하여
2023년 03월 05일(일) 23:00
이럴 줄은 나도 정말 몰랐다. 어쩌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공연히 분개해서 눈까지 흘기곤 하지 않았던가. 대체 저게 뭐라고 품에 안고 애지중지 떠받든단 말인가.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었다. 우리 형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네발짐승한테는 지극 정성을 다하면서 가족이 된 나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덕분에 나는 질투심인지 섭섭함인지 혹은 소외감인지 모를 얄궂은 감정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품에 안겨 온갖 사랑을 받던 그 개의 이름은 ‘사랑이’였다. 머리에는 항상 리본이 꽂혀 있고 연갈색 털은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팔 하나로도 안을 만큼 작고 귀엽고 깜찍한,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애가 새끼를 낳았다. 고민 끝에 입양을 결정했다. 아이들도 본격적으로 조르기 시작했고 그사이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도대체 개란 무엇인가. 무엇이 그토록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알고도 싶었다. 좋아, 한번 키워 보지 뭐.

그렇게 개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이를 새로 키우듯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귀찮기는커녕 점점 더 빨려 들어갔다. 무슨 말인가를 알아먹으려는 듯 눈은 말똥말똥 고개는 갸웃갸웃, 세상천지에 그렇게 이쁜 것이 없었다. 어떤 때는 세 살배기 아기 같고 어떤 때는 심오한 철학자 같이도 보였다. 깊은 사색에 빠진 듯 무언가를 오래도록 응시하는 모습은 결코 의미 없는 본능 따위는 아닌 듯싶었다. 볕 좋은 창가로 나와 가만히 햇볕을 쬐고 있을 때면 혹시나 디오게네스의 환생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형님네에 갈 때면 녀석을 동반했다. 빈집에 혼자 둘 수도 없고, 무엇보다 제 어미를 보러 가는 것이니까. 게다가 녀석에게는 진짜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이’의 존재가 되는 것. 내 계산은 딱 맞아떨어졌다. 녀석은 제법 훌륭한 메신저가 돼 주었다. 형님과 나 사이 대화의 물꼬를 터 주었고 집안에 활기가 돌게 했다. 개 두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시쳇말로 개판이 따로 없었지만, 그렇게 ‘공유’함으로써 저 얄궂은 감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랑이’도 죽고 ‘기쁨이’도 죽었다. 아이들도 자라서 제 길을 찾아갔고 집에는 적막이 남았다. 있다가 없는 건 견디기 어려운 법. 다시 또 개 한 마리를 데려왔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요놈은 더 예뻤다. 움찔움찔 고무락거리며 잠에 취한 모습이나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호기심 가득한 행동이나 뭐가 그리도 좋은지 마구 흔들어대는 꼬리가 차라리 애틋하다고 해야 할까. 참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개와 더불어 산 지 꽤 오래되었다. 그 사이, 공연히 분개하던 내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품 안에 안고 가건 뽀뽀를 해대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애견 카페, 애견 미용실, 애견 운동장 심지어 애견 유치원이 성업 중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제 가족에게도 저렇게 할까? 의구심도 갖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지나가는 개한테도 손 내밀어 아는 척을 하고, 끔찍이도 싫어했던 고양이에게도 저절로 눈길이 간다. 길에서 만나면 행여 놀라지 않도록 발걸음을 멈추고, 요망스럽다 기괴하다 지레 퉁을 놓던 것도 거둬들인 지 오래다.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개나 고양이를 보면 비명부터 지르는 사람,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거나 핀잔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공연히 못마땅하다. 대놓고는 못 해도 속으로는 쯧쯧 혀를 차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일단 한번 키워 보시죠, 은근히 권유까지 해 보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이 될 줄을 어찌 알았겠나.

개가 없어도 나는 잘 살았을 것이다. 혹시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속박되는 일 없이 몇 날 며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애써 수고하지 않아도 집안은 더 정갈하고 깔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더라면 여전히 나는 저 개를 ‘모시는’ 사람들에 대하여 적의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며, 늘어가는 애견 인구를 보며 세상이 정말 동물의 왕국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개탄해 마지않았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오만의 탈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한없이 거들먹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개가 없어도 내 삶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테지만, 아니 훨씬 홀가분할 것이 분명하지만, 저 생판 다른 종들과 해찰하는 즐거움을, 우리가 우주 안의 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속에 적잖은 위로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