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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복판의 ‘입춘대길’-서금석 문학박사·전남대 전 강사
2023년 02월 05일(일) 19:50
지난 4일은 태양력으로 한 해의 시작인 입춘(立春)이었다. 대개 양력 2월 4일이지만 2월 5일인 경우도 있다. 입춘 때 추위를 입춘 추위라고 한다. 따뜻한 봄날 이후 나타나는 3월쯤의 꽃샘추위와는 다르다. 속담에 “봄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고 했다. 이른 봄추위를 조심하라는 한파 경보이다.

24절기는 태양력이다. 태양력에서 달력을 만드는 그 기점은 동지였고, 24절기의 시작점은 입춘이다. 황경(黃經) 0도를 시작점으로 삼았던 춘분(春分)이 있다. 춘분은 천체 움직임을 계산하기 위한 기점으로 밤낮의 길이가 같은 시간 길이이며, 절기로써 의미가 컸다.

처음부터 24절기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래전에는 30절기도 써보고 25절기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다가 24절기가 1태양 주기의 생산력과 궁합이 잘 맞았다. 한마디로 삶의 생체 리듬과 24시간 체계는 가장 적합했다. 하루가 그랬고, 1년이 그렇다. 한 달은 태음력이 만들어 낸 시간으로 24일 체계가 애초 불가능하다.

절기(節氣) 12기와 중기(中氣) 12기를 합해 24절기가 되었다. 대략 절기와 중기 사이는 15.218일 정도이며, 절기와 절기 사이는 30.437일가량 된다. 정수 날짜로 정확히 떨어지지 않으므로 절기와 중기가 15일인 경우가 많고 간혹 16일로 이 소수점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다. 1년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고려시대는 절기가 드는 날에 관리에게 휴가를 주었다. 물론 이때의 휴가는 일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요즘의 공휴일 개념이 아니다. 절기가 드는 날이니 당연히 제사도 지냈다. 모여 조상을 기억하고 그 제삿밥으로 사람들은 제때 먹고살았다. 옛날에는 제사가 많았고, 주기적인 제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공생 기억 공간이자 영양 보충의 시간이었다.

한 해의 시작이 입춘부터라고 했으니, 사람이 태어나는 시간을 모티브로 운명을 예단하는 사주팔자에서 2023년 계묘(癸卯)년의 새해는 입춘인 2월 4일 시작한다. 따스한 때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의 방향이 뒷걸음치지 않으니 추운 겨울을 짐짓 염려할 필요는 없다. 입춘 때의 자연 시계는 따뜻한 봄을 바라보고 있으니, 봄의 대문을 열어 놔야 한다. 입춘은 봄을 맞이하는 대문 문턱과 같다. 아직 대문 밖 찬 바람이 멈추지 않으니, 입춘은 겨울 한복판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차가운 겨울철에 봄(春)을 세워(立)야 하고, 누구나 그 출발선에 서(立)야 하기 때문에 입춘(立春)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했던 옛사람들의 희망과 의지, 지혜와 사랑이 입춘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24절기는 숱한 삶의 경험치로 태양 주기와 자연의 생산력 그리고 생체 리듬을 맞추려는 삶의 사이클로 자리 잡았다. 요컨대 선조들이 만들어 낸 기막힌 또 하나의 출발선이 입춘이었다. 기대 가득하고 겸사겸사 불행도 막아야 했다. 아리따운 고운 빛깔의 장식을 머리에 올려 꽃단장했다. 재난이 없는 봄(宜春: 풍우가 없는 봄), 두 글자를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입춘 때가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글귀를 대문이나 기둥에 붙였다(春帖). 벼슬아치들은 상서로운 일이 있기를 기원하며 임금에게 글을 써서 바쳤다(延祥詩).

입춘 날에 흙으로 소를 빚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모두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이 시절 계절 음식은 부족하다. 풀이라도 뜯고 싶은 심정에 눈이 녹을 무렵 산속에서 자생하는 겨자초(山芥)를 캐 와 더운물에 데쳐 초장에 무쳐 먹었다. 그 맛이 너무 매워서 고기를 먹은 뒤에 데친 겨자초를 먹었다. 요즘 삼결살에 씀바귀 궁합이랄까. 중국에서는 입춘 날에 무와 미나리 싹으로 채반(菜盤)을 만들어 먹고 또 이것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경상도 사투리로 ‘대끼리’는 ‘대길’(大吉)에서 유래되었다. ‘대길’은 “크게 길(吉)하다” 혹은 ‘큰 행운’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복 많이 받아라’라는 표현이다. ‘건양다경’도 같은 뜻이다. 24절기 중 유독 ‘대길’은 입춘과 조응하고 공명한다. 24절기로 입춘은 또 하나의 새해이며 출발선이다. 따라서 ‘입춘대길’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