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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고쳐야 할 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22년 11월 29일(화) 00:4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하던 2020년 2월, 중국 당국에서 우한시에 도합 2600 병상에 이르는 두 개의 병원을 각각 열흘 정도 만에 지어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병원들의 이름 역시 화제가 되었다. 훠선산(火神山)병원과 레이선산(雷神山)병원. 중국 언론에서는 불의 신과 우레의 신이 역병을 물리쳐서 산처럼 멈추게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보도했다. 코로나가 손상을 입히는 폐는 장기 가운데 오행 중의 금(金)에 해당하는데 금의 상극은 화(火)이고 우레는 불을 일으키는 목(木)에 해당하니 불과 우레로 코로나를 제압할 병원의 이름을 지은 것이라는 설명도 함께 회자되었다.

불과 우레의 만남은 주역(周易)의 서합 괘를 연상하게 한다. 서합은 입 안에 있는 물건을 깨물어 씹는다는 뜻이다. 각각의 효에 대한 설명은 형틀을 차고 신체 부위를 상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형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작 서합 괘 자체는 형통하다고 했다. 입 안에 무언가가 있으면 제대로 다물 수가 없어서 틈이 생기므로 씹어서 제거해야 위아래가 합하여 형통함을 얻는다. 이 씹어서 제거하는 행위로 형벌을 형상화함으로써 그 유용함을 드러낸 것이다. 서합 괘는 강경함과 온유함을 겸비하여 형벌을 공정하게 집행함으로써 위아래가 화합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왔다.

서합 괘의 맨 아래 양효는 “형틀을 신어서 발뒤꿈치가 상하니 허물이 없다”고 설명되어 있다. 지위도 낮은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이미 형벌을 받은 상황인데 왜 허물이 없다고 했을까? 공자는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잘못이 있더라도 고칠 수만 있다면 잘못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서 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은 징계를 받아들여서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형벌로 발을 상하게 하여 큰 죄를 짓는 자리로 가는 것을 경계한다면 결과적으로 복이 되니 허물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22일 기자회견에서 최우선의 과제로 꼽은 것은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되어가는 오늘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고위 공직자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이번 참사를 보며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원인과 상황은 다르지만 온 국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국가적 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세월호 참사 때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곧바로 사퇴 의사를 밝히고 팽목항을 지켰으며, 국무총리 역시 11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규명과 진정한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 가운데 정국이 파국으로 이어졌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발생 전후의 대응 과정과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이들이 보여준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문책보다 수습이 우선이라는 답변만 되풀이되는 것을 보며, 과연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고 수습할 의지를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서합 괘의 나머지 효들 역시 각각 형벌을 언급했지만 그 결과는 허물이 없고 길하다고 했다. 그러나 맨 윗자리에 놓인 양효에 대해서만큼은 “형틀을 메어서 귀가 상하니 흉하다”라 하였다. 형벌이 극에 이르렀는데도 잘못을 고치지 않고 경계를 들을 수 있는 귀도 없이 스스로 악행을 쌓아가기만 하니 이보다 더 흉한 것이 없다. 사과와 책임 규명을 넘어 더욱 중요한 것은 참사의 원인을 파악하고 고쳐 나가는 데에 있다. 국민 안전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늘리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면 이 분노와 슬픔을 과감한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야 할 때다. 반복되는 국민적 참사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구태를 답습하기만 한다면, 마침내 어떠한 조치로도 잘못을 고칠 수 없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꽃다운 영령들의 가시는 길이 헛되지 않게 되기를, 다시 한번 간절하게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