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무등산의 주인은 자연이다- 차노휘 소설가
2022년 11월 22일(화) 02:00
2016년 9월, 나는 처음으로 무등산을 산행했다. SNS 기록에 따르면 무등산 3대 주상절리인 서석대, 입석대를 거쳐 광석대가 있는 규봉암에서 도시락을 먹고 화순 이서면으로 하산을 했다. 그 뒤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무등산을 탔고 2022년 4월에 드디어 100회를 찍었다. 처음에는 100이라는 숫자가 막연했지만 내 두 다리에 힘이 실렸을 때는 담력 또한 커졌다는 것을 알았다. 덩달아 산행의 묘미까지 알게 되었다. 이런 기쁨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SNS에 업로드했더니 내 소소한 계획을 벤치마킹하는 지인까지 생겼다. 곧이어 지인들이 내게 ‘무등산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원효사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서석대로 향하는 무등산 옛길을 좋아한다. 서석대까지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교까지는 울창한 숲 때문에 등산로만 보고 걸어야 하지만 혼자서 사색하기에 안성맞춤 코스이기 때문이다. 하산할 때 중봉을 거쳐 동화사터로 향한다면 안개 낀 연봉 아래 터를 잡은 광주 시내를 발아래에 둘 수도 있다. 원효사 주차장에서 꼬막재를 지나 규봉암, 장불재, 토끼등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코스는 높낮이가 무난한 하이킹 코스로 좋다.

가을에는 백마능선의 우아한 억새풀의 출렁임에 몸을 맡겨도, 제2수원지에서 칠성계곡을 타고 중머리재로 향해도 좋다. 등산객이 붐비는 주말에 조용히 산행을 하고 싶다면 원효사에서 출발해서 꼬막재를 지나 누에봉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날의 산행 컨디션에 따라 혹은 동행하는 사람의 체력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적막한 겨울 숲에서 혼자 듣는 고목을 쪼는 딱따구리 소리는 특별하다. 난데없는 그 소리는 흡사 일본 공포 영화 ‘링’의 효과음과 같다. 이렇듯 무등산은 점점 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귀국 신고식을 서석대에서 치러야 직성이 풀렸다. 사람에게 지칠 때에도, 진행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무등산을 찾았다. 10년 이상 키운 반려견들을 화장하고 보내준 곳도 약사암이 내려다보이는 새인봉이었다.

마침내 100회를 마친 몇 개월이 지난 10월, 광주시와 무등산 정상에 주둔하고 있는 공군이 상시 개방에 합의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논의되는 무등산 개발 건. 케이블카 설치 및 모노레일 등 여러 방법들이 언론에 등장했다. 늘 그렇듯 자연을 대하는 ‘정부’의 방식은 ‘인간 대 자연’이었다. 자연은 개발의 대상일 뿐이어서 수익을 창출해야만 그 값을 한다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여전히 무장하고 있었다. 좀 더 인간적인 명분을 내세울 때는 노인이나 장애인 그리고 여성은 산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몸을 지녔다면서 그들에게 정상을 밟을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6년 동안 무등산을 오르면서 성별과 국적 상관없이 여러 연령대를 만났다. 60~70대도 심심찮게 봤다. 건강해서 산을 타는 것인지 산을 타서 건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모두 나름대로 빛이 났다. 산을 가까이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성별이나 신체 조건과 달리 ‘관심’이었다. 나 또한 40년을 보내는 동안 ‘산’은 그냥 ‘산’이었을 뿐이다. 내가 땀을 흘려서 산행을 시작한 뒤로 그 산이 무등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산의 말랑한 속살들이 내게 애잔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애정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두 발로 걸으면서 땀을 흘리면서 피곤한 다리를 중간중간 쉬면서 정수리에 뜨거운 태양을 이고 가면서 그곳에서 거처하는 모든 것들과 교감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쉽게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정상에서 전망만 하는 행위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자연과 일대일로 끈질기게 대면했을 때 깨달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등산의 최고의 개발은 자연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등산의 주인은 자연일 뿐만 아니라 그 자연이 인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