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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2022년 10월 18일(화) 00:45
요즘 한 여고생이 그린 카툰(cartoon) <윤석열차>가 단연 장안에 화제다. 현직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그 ‘당돌한’ 내용도 그렇거니와 이를 두 번이나 ‘엄중 경고’한 문체부의 ‘조속한’ 대응과 이를 두고 국정감사에서 여야 간에 오간 설전(舌戰)까지, 참으로 현 정부의 민낯과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바탕 난장(亂場)이었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부천시 소속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올해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를 맞아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을 실시해 카툰 부분에서 문제의 <윤석열차>를 금상으로 수상했다. 수상 작품들은 축제 기간인 9월 30일~10월 3일에 전시까지 마쳤다. 그런데 전시가 끝난 다음 날 문체부로부터 이를 엄중히 경고하며 신속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이 날아왔다. 이유인즉 “행사 취지에 어긋나게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전시”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순수’해야 할 고교생이 감히 대통령을 풍자한 ‘불순한’ 의도를 드러냈다는 것이고, 이를 알고도 만화영상진흥원에서는 금상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문체부에서 대통령을 풍자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무려 33회 언급했고, UN 연설에서 21회나 강조한 ‘자유’를 들먹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지 여론이 들끓자 돌연 입장을 바꿔 이번에는 ‘표절’을 문제 삼았다. <윤석열차>가 스티브 브라이트(Steve Bright)가 2019년 『더 선(The Sun)』에 그린 카툰 <영국 총리 열차>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윤 대통령이 ‘자유’를 그렇게 강조했으니 ‘표현의 자유’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인데다, 『쿠팡 TV』의 시리즈 「SNL 코리아」에서 주현영 기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유롭게 정치 풍자를 허용해 줄 거냐는 질문에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입니다”라고 언급한 바도 있었다. 해서 문체부는 대응 전략을 바꿔 표절을 부각시킴으로써 작품성은 물론이고 이를 거르지 못한 심사 과정도 문제 삼으려 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는 예술 작품 창작의 기본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흔히 문학이나 예술에서 원작에 기대어 하나의 작품을 변형해 재창작하는 것을 ‘패러디’(parody)라고 한다. 그러면 왜 원작을 활용해 재창작하는가? 이미 익숙한 이미지나 메시지를 활용해 이를 변형함으로써 풍자와 비판의 의도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다. 남의 작품을 몰래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원작을 활용해 재창작한 셈이다. 패러디가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쓰는” 표절(剽竊)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그림은 수없이 패러디됐지만 누구도 표절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의 영원한 고전 <춘향전>은 무려 12편의 패러디 소설이 등장했지만 그걸 표절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근대 소설인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5)은 최인훈, 주인석 작가는 물론이고, 시인 오규원이나 연극인 성기웅도 같은 제목으로 작품을 변형, 재창작했지만 표절 시비는 없었다. 왜 그런가? 이미 익숙한 원작의 인물과 사건을 활용해 다른 주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고생이 그린 <윤석열차>와 비슷한 카툰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토마스 열차’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무려 12개나 올라와 있었다. ‘폭주 기관차’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각국에서 거기에 부합한 정치인들을 풍자한 것이리라. 그런데도 표절 시비는 없었다. 마침 원작자인 스티브 브라이트는 <윤석열차>가 주제와 소재가 모두 다르기에 “절대 표절이 아니다”(Absolutely not plagiarism.)고 SNS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폭주하는 <윤석열차>는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가? 조종석에는 ‘김 여사’가 앉아 있고 뒤로는 정권을 받쳐주는 ‘호위무사’인 4명의 검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있다. 폭주하는 기차에 놀란 국민들이 황급히 피하고, 뒤로는 용산 대통령실인 듯 무너지는 건물이 보인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민생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고서는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하여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국세를 낭비하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어떻게 볼까? 더군다나 최근 ‘외교 참사’를 비롯하여 북한과의 강대강 대치로 위태로운 한반도 정세, 여당 대표의 ‘토사구팽’(兎死狗烹)과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 감사로 인한 야당과의 대치 정국 등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20%대로 끌어내리고 있지 않은가. 미국 대통령과 ‘48초’ 만나고 나오면서 내뱉은 욕설, 비속어 파문에도 당사자인 대통령은 오히려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며 언론을 질타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식 태도를 보였다. ‘청력 테스트’와 ‘듣기평가’를 거친 국민들 70%가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옹호하느라 오히려 언론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과 여론을 무시하고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윤석열차’의 모습이 바로 현 정부의 민낯일 것이다. 문제는 폭주하는 ‘윤석열차’에 피하듯 정부의 실정(失政)을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툰을 그린 여고생은 유세 때 기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고 있는 윤 후보의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과연 ‘윤석열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